내가 나를 분별하고 있구나!
지난주에 엄마가 전화를 해서 추석 연휴에 태진이네랑 우리랑 2박 3일 여행을 가자고 하신다. 잠시 잠깐 만나는 게 다였는데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스럽다. 비용은 본인이 다 낼 테니 가자고 하신다. 가족들 스케줄 다 물어보고 개는 아빠한테 맡겨놓고 가기가 불편한 참인데 동생이 애견 풀빌라를 숙소로 알아봤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추석 연수 끝자락에 1박 2일밖에 없단다.
나도 혼자 있는 시아버지 안 챙기고 혼자 있는 친정아버지도 안 챙기고 재혼한 엄마랑 엄마 남편과 여행을 가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비용이 없어서 못 가는 게 아니고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더 마음이 편해서 명절에 놀러 다니지 않는 거다.
동생이 1박 2일만 가자 했더니 엄마가 그럼 다음에 가자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엄마에게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엄마, 근데 갑자기 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엄마는 재혼하고 나서 대가족 맏며느리로 시댁에서 제사를 30년 가까이 지냈는데 엄마의 시아버지가 지난 명절부터 차례를 없애자고 했단다. 많은 시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명절마다 시달렸었는데, 동서들도 다 친정 간다고 떠나버리고 명절 내내 설거지한다고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여행 가자고 했다고 말하고 시댁에 안 가려고 했다고 한다. 엄마도 명절에는 시댁 가기 싫단다.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나는 엄마에 대한 비난이 나온다. 자기만 며느리인가? 그럼 평소에 잘 왕래도 없던 이혼한 시어머니랑 시어머니의 재혼한 남편까지 모시고 가야 하는 우리 올케는? 어른이라서 말도 못 하고 2박 3일이든 3박 4일이든 같이 있으면 편하겠냐고?
엄마한테 웃으면서 엄마도 시댁 가기 싫지? 그럼 엄마 며느리는 시어머니랑 같이 있고 싶겠나? 하고 물었더니 엄마가
자기가 뭐 귀찮은 거 시키냐, 돈도 다 보태준다는데 뭐가 불편하냐고 한다.
엄마가 참 내로남불이다. 좋은 시어머니든, 나쁜 시어머니든, ‘시’자 붙은 사람이랑은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라고 말해준다. 더 말 섞어봐야 자꾸 비난이 나올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카톡으로
다음에 며느리, 사위, 남편 다 떼놓고 태진이랑 나랑 엄마랑 셋이서 놀러 가자고 했다.
엄마가 철이 없고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분별하다가 엄마도 며느리구나, 엄마도 친정이 필요하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나온다. 나는 명절에 친정이 있나? 시아버지도 챙기고 친정아버지도 챙기고 이제 친정 엄마 마음도 챙겨야 하는데 내가 챙김을 받는 친정이 어디 있나 울컥한다.
이제 명절이고 시댁이고 친정이고 나발이고 나도 내 맘대로 약속도 잡고 여행도 다니고 멋대로 살아봐야지. 그렇다고 잘못된 것인가?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구나! 그동안 꼭 눌러놓았던 누름돌을 빼 던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긴긴 이번 명절이 기다려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