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일기

학원 숙제가 많다고 시건방 떠는 아들

부모 잘 만나 고생 안하고 철이 없는 아들

by 강혜진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아침잠을 자던 아들이 한숨부터 쉰다.

어제 저녁 학원 가기 전에 밥 한 술 뜨고 가라고 했더니 숙제가 많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하던 아들이다. 학원에서 10시까지 공부하고 늦게 들어와서는 아빠가 챙겨주는 야식을 먹고 11시가 다 되어야 잠이 들었다. 늦어도 10시에는 꼬박꼬박 자던 아들이 잠을 줄이자 피로가 몰려온 줄 알았다. 시험범위도 많고 시험 공부할 시간은 부족해 스트레스도 받는 눈치였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아들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엄마, 학원 수학 숙제가 너무 많아. 하루에 다섯 장씩 풀 시간이 없다.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주원이가 요즘 힘든가 보네.”

아이의 투정 속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 읽어주라던 책의 한 구절을 챙겼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이 학원 못 다니겠다.”

스스로 학원에 다닌다고 말한 지 딱 1년 됐다. 숙제를 많이 내 주는 학원이라니, 그 학원 선생님 참 일 잘하시네, 낸 학원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이 건방진 소리를 한다.

“하루에 다섯 장씩 숙제 안 해도 수학 점수 잘 나오는데 왜 해야 하는데?”


아들의 시건방진 태도에 마음이 요란해진다. 혜진이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아들의 시건방진 말을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함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내 마음만 들여다 봤다. 아침, 학교도 가기 전에 아들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해 주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오는 걸 꾹 참고 있었는데 아들이 한 마디 더 한다.

“수학은 안 해도 점수 잘 나온다고. 다른 거 공부할 시간도 없다!”


톡 까놓고 말해서 선생님이 학원 숙제 줄여준다고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한다고? 축구하고 놀거나 게임하고 유튜브 보겠지. 중학교 2학년이 시험 기간에 지 할 거 다 하고 10시에 꼬박꼬박 자면서 숙제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잠이 부족하면 안 되니까 애가 일찍 자는 건 불만이 없는데, 근데 자기가 뛰어나서 수학은 더 할 필요가 없다고? 그만큼 공부했기 때문에 수학 점수가 그나마 잘 나오는 건데 지가 잘나서 안해도 된다고 말하는 꼴을 보아내기가 힘들다. 숙제가 많아서 학원을 바꾸고 싶다고? 숙제 많이 내 주는 걸 다 해내는 사람이 있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나약해 빠져서 뭘 하겠냐?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비난이 쏟아지는 걸 멈추고 그냥 출근했다.

회초리를 꺾어서 때리고 그런 생각이라면 당장 학원 때려치우라고. 인간 안되는 건 공부해 봤자 말짱 꽝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이렇게나 교만하고 건방진 아들을 보아내기가 힘들다. 부모 잘 만나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철없는 아이 같아서 실망스럽고 나 어릴 때랑 비교해도 너무 나약해 빠진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내 마음 들여다보는 공부를 했다.


저녁에 집에 오니 암 말 안하고 학원 숙제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속이 좀 편안해진다. 아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널뛰는 엄마 마음. 이 또한 진리임을 오늘 깨닫고 잡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며느리는 명절에 이래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