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느긋하게 쉬면 되는데 나는 방학만 되면 불안도가 상승한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쉬고 있는 순간이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엔 부지런히 밖으로 나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없는 스케줄을 만들어 일을 하는 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불안함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쉴 때도 쉴 때지만, 특히 내가 불안을 많이 느낄 때는, 내가 잘 모르는 일을 처리할 때, 나 혼자 처리해버리면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협조를 받아야만 완료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특히 그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내가 정한 시일보다 협조자가 일을 더디게 처리할 때, 나의 불안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겨울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처리하던 일이, 내가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미숙하던 그 일이, 아직 누군가의 협조가 부족해 마무리되지 않자 나는 특별히 더 조급해졌다. 놀 때도, 쉴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양치할 때도... 언뜻 언뜻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아! 내가 일을 잘하고 싶구나. 빈틈없이 계획한 대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구나. 그러면서도 그 불안이 성가시고 싫은가 보구나. 지금은 불안을 공부할 때이구나. 더 자주 불안하고 초조해야 할 때이구나.
그런데도 그 불안함을 누그러뜨리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레깅스를 꺼내 입고 가벼운 방한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로 했다. 찬바람을 뚫고 달리면서 땀을 흘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더니 일 걱정을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저 멀리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오르막길을 뛰었는데, 뛰다 보니 내 목적지는 학교다. 쉬는 날인데 뭐 하러 학교에 왔냐는 교무실 식구들에게 운동하러 나왔다가 잠시 물 마시러 들어왔다고 이야기했다. 온 김에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결국은 4시간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잘 풀리지 않던 일을 마무리 짓고 왔는데 마음이 편안해진 이유가 일을 해결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달리기하는 것이 불안과 강박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란 걸 오늘 제대로 깨달았다.
오늘 아침 필사를 하다가 헤밍웨이의 집필 태도에 대해 읽었다. 헤밍웨이는 새벽 5시 반부터 집필을 시작해서 의자에 앉지 않고 일어선 채로 타자기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에 500단어를 쓰고 나면 미련 없이 작업실을 떠났다고 한다. 글 쓰는 영감이 바닥나지 않도록 적당한 때에 원고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종일 일에만 찌들어 있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입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깔끔하게 일은 잊고 가족과의 시간을 즐기거나, 취미 생활을 하거나, 일 이외의 것을 온전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일도 잘하고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만 그 매력을 느끼고 살았는데, 사실 나도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도 일 생각하며 쉼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곁에 있는 가족과 진심으로 대화하지 못하고, 일 걱정에 여가를 미뤄두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
사실 이런 생각은 평생 해 왔지만, 다짐은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일로 인한 불안이 생겨날 때마다 그 불안을 끊어내려 할 것이 아니라 불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공부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불안의 실체를 알고 불안을 즐기게 되는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능히 일에 매달릴 수도, 일을 무시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는 날이 오겠지.
헤밍웨이의 일을 대하는 태도, 예쁘게 필사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