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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22. 2020

특별하지 않음의 매력

학창 시절에 나는 영어에 있어서는 전교에서 인정해주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 통역번역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영어 전교 1등만 모인 곳에서 공부를 했고, 대학원 졸업 후에도 국제통상과 외교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학창 시절에 한 영어 하던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통번역사로 일했다.


영어를 잘하는 집단 속에서 10년 이상 지내며, 영어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내 일에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존감을 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남들보다 잘나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나로서 나를 인정해주고, 나답게 생활하고 일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 싸움을 싸우면서 내가 얻은 답은, '특별한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특별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유일하게 특정 능력을 가진 사람일 때는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간 사람들이 대학 입학 후 힘들어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존재여야 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다른 사람과 비교한 내가 아닌 진정한 나와 마주하게 되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가꾸어나갈 수 있게 된다.


국문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 문서를 감수하는 일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특별하지 않는 일로 여겨지지만, 남들이 내 역할을 평범하게 생각한다고 불평하지 않고 이 평범한 일에 성실하게 임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실수로 빠뜨린 내용이 보이고, 조금 더 맥락에 어울리는 용어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보였다.


나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남동생이 언젠가 박지성이 대단한 이유가 득점은 많지 않아도 시합 중에 경기장의 빈 공간을 잘 찾아들어가 실책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나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빈틈을 채우는 역할을 내 역할이라 생각하고 일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니 스스로 보람을 느꼈고, 스스로 느끼는 보람은 다른 사람이 인정을 해주던 해주지 않던 내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의 자존감을 위해 일상에서 또 하나 실천했던 것은 밥을 잘 차려놓고 먹는 일이었다. 자취생이라고 하면 즉석밥 하나 데워서 달걀후라이, 햄, 김치, 김과 함께 먹는 식사가 떠오를 것이다. 보는 사람 없다며 대충 한 끼 때우는 기분으로 먹지 말자. 평범한 자취생의 밥이라도 이 한 끼 식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세팅해서 먹어보자. 특별하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나를 위해 성의 있게 차려주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도 존중해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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