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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an 17. 2020

공감은 못하지만 사랑할 때는

참치야채죽

나는 남이 이야기를 할 때 리액션을 잘 하는 편이다. 눈도  마주치고 고개도 끄덕이면서 최대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나에게 공감능력이 좋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불만을 들었다. "언니는 제 말을 이해 못하는데도 자꾸 이해한다고 하니까 제가 할 말이 없어져요. 차라리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제가 설명이라도 하면서 제 얘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 언니와 이야기하는 게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수년 전에 들은 말인데도 아직도 기억나는 것을 보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공감을 못 하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서운함이 좀 지나가고 나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상대방과 같은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공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말을 내가 너무 쉽게 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생각을 할 때쯤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비슷한 말을 보게 됐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후부터 나는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이 안 될 때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나는 묵묵히 듣는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힘든 마음이 해소된 사람도 보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한 말에서 스스로 답을 찾은 사람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나에게 고마워했다.

 

이야기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줄 수 있는 말도 들어줄 수 있는 말도 없을 때는, 밥 한 끼 사주거나, 밥 한 끼 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힘든 사람은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 될 테니 간단하게 참치야채죽은 어떨까. 힘 없이 누워있는 그 사람을 위해 참치야채죽을 해놓고 나갔다 들어오면, 그 사람은 같은 자세로 누워있어도 냄비를 열어보면 죽은 반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참치야채죽 (2인분)


재료

흰밥 1.5공기, 물 3컵, 참치 작은 캔 1개

양파 1/3개, 당근 1/3개, 애호박 1/3개, 소금, 참기름, 깨소금


만드는 법

1. 냄비에 흰밥과 잘게 다진 양파, 당근, 애호박을 넣고, 물을 부어 약한불에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가며 끓인다.

2. 10분쯤 지나면 밥이 풀어지고 야채가 익어서 죽 상태가 되는데, 이때 기름을 뺀 참치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고 조금 더 끓여준다.

3. 완성된 죽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깨소금을 뿌려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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