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Feb 07. 2017

운명, 그 짜릿하고 아픈 것.

연애법 여섯째

    '운명'이란 연애를 수식하는, 살 떨리게 좋은 말이다. 저 먼 과거에 존재조차 모르던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대화하는 오늘에 닿은 것이 필연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연애를 숭고한 무엇으로 신비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운명'으로 연애를 받아들임으로써 상대에 대한 끌림이 인간의 것이 아닌 고결하고 성스러운 인간 상위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필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연애에 대하여 더욱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운명'이란 말은 연애에서 힘이 세다.


    그러나 과연 운명은 우리의 연애를 충만하게 하는 진정한 요소일까? 


    회의적이다. 운명은 연애를 현실에 매이지 않고 달콤한 꿈과 같이 여기도록 유도한다. 운명이 상대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상대에 대한 환상이 연애 대한 신비감을 자아냄으로써 현실의 문제로부터 연애를 멀리 떨어뜨려 꿈결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곧 연애가 운명이라는 믿음은 연애를 낭만적인 것으로 만든다. 낭만은 연애에서 중요하다. 연애를 통해 생산하는 이야기를 풍성하고, 극적이게 만들어 상대를 운명적 상대로 인식하게 하는 순환적 과정을 원활하게 하니까.


    그런데 과연 낭만이 연애에서 진정으로 중요할까? 회의적이다. 낭만만으로 연애를 존속시키거나, 완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는 생활이며 생활로서 지속되고 완성된다. 연인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일이 연애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 대부분의 시간을 기준으로 이 연애가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지, 불행을 던지는지 판단하고, 그 판단에 근거하여 연애의 존속과 종결을 결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 사람을 연애로 묶는 것은 생활의 요소가 대부분이지, 낭만의 요소는 큰부분이 결코 아닌 것이다. 곧 연애는 '낭만적 생활'이 될 수 있을지언정 '생활적 낭만'은 될 수 없다. 결국 연애를 낭만으로 만드는 데 주로 역할을 하는 운명은 수사로서 짜릿할지언정 연애에서 뺄 수 없는 중요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운명은 연애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닐 뿐더러 좋은 연애에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먼저, 운명은 연인 각자의 선택행위의 가치와 의미를 퇴색시킨다. 운명이 우리로 하여금 연애하게 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바로 당신을 선택한 우리의 결정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우리가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누군가의 손에 우리 연애의 시작여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애를 유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우, 마음 씀이 좋은 연애를 만드는 핵심 변수로서 지위를 갖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운명이다. 곧 연애의 모든 것이 운명적 결정이라면, 우리의 선택은 의미없는 몸짓에 불과한 것이 된다고 하겠다.


    운명은 더욱이 연애를 통제 불가능 영역에 두게끔 한다. 연애의 시작을 운명이 결정한 것처럼 연애의 지속과 종결을 운명에 내맡기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를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각자의 노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며, “맞춘다”, “적응한다”와 같이 노력이 담긴 말들은 마치 상대를 운명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믿게 만드는 징표가 된다. 더 심각하게는 때때로 연애가 버거워지고, 권태로워질 때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라고 믿는다면 버거움과 권태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게 된다.


    결국 연애가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연애를 이끌어가는 변수 중에 나와 당신의 손에 쥔 것은 거의 없는 것과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설령 연애가 운명, 그 자체가 아니라 '운명적 연애'를 이념형(ideal type)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재론컨대 연애하는 동안 차이를 받아들이고, 각자의 방식에 맞추며 적응하는 노력이 갖는 가치를 인식하는 데 '운명'이 인지적 장벽으로 버티고 서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요컨대 운명은 연애에서 살 떨리게 좋을 수 있지만, 좋은 연애를 가꿔야할 연인을 살 떨리게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연애에도 노력이 중요하다. 일상의 모든 것이 선택할 때 의도한 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모두 선택의 결과인 것은 틀림없다. 연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운명은 짜릿하지만 좋은 연애를 위한 상대의 살뜰한 노력보다 감동적일 순 없다. 그리고 연애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이 없다. 그래서 좋은 연애를 위해 유용할 수도 없다.




연애법 여섯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