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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20. 2017

긴장, 갈등 아닌 집중

연애법 스물한째

1.

연애의 어려움은 해결이 난망한 불안에서 생긴다. 사랑스럽고, 중요한 연인과 사랑을 다짐했던 그날의 끈끈함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자신을 뒤흔드는 상대의 파장에서 얼마간 자율을 얻어 자신다움을 지키고 싶다. 연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연인을 통제해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대개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을 좇는 것은 연애의 일상에서 ‘항시’ 남은 과제처럼 된다.

완전한 복종과 전면적 권력행사로 편안해질 수 없는 까닭은 자율성 상실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상대에 대한 양(羊) 같은 온전한 수용과 오만한 정복으로 자신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상대의 자율성이 질식된다고 지적한다.* 자율성 상실은 자신의 근원적 불만족을 유발하고, 자율성을 잃고 남은 상대에 대한 애정과 행위의 수동성은 연인의 불만족을 초래한다. 즉 연애하기를 선택하고, 계속하기를 결정한 자율성이 사라지면서 연애의 이유도 점차 퇴색되는 것이다.


우리는 연애에서 완전히 편안한 상태로는 결코 오래도록 머물 수 없다. 연애의 일상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복종과 지배 사이의 어딘가에 머무르게 된다. 상대가 만드는 파장에 동요하고, 자신이 만든 파장으로 상대를 뒤흔드는 긴장(緊張)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연애의 일상을 채우는 긴장감을 연애에 유익한 방향으로 관리하기도 어렵다. 긴장을 서로간의 싸움으로 비화될 조짐이 있는 갈등상태로 인식해 회피의 대상으로 삼는 통념이 연애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 우리 안의 통념은 낯선 상황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 상황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이 갈등으로, 회피의 대상으로만 인식된다면, 연애의 거소(居所)인 이 자리에 갈등 말고도 있는 협력, 사랑의 자리는 잊힌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긴장에 대해서 달리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2.

연애는 서로의 어떤 이어짐이다. 연인은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끈은 자아의 매력으로 각자 늘어졌다가 두 끈이 역할이란 이름의 매듭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연애의 끈으로 짜이게 된다. 이 끈이 연결될 때 비로소 연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잇는 끈이 없다면 연애관계라고 이를 수 없다. 이어지지 않은 둘은 그저 곁에 선 것에 불과하다.


연인은 둘 사이에 이어진 끈을 당겨 연애의 존재를 짐작한다.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의 일상을 거듭하면서 서로에게 역할을 원하고, 그 욕망이 만든 인력(引力)이 상대를 원하는 모습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때 연애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연인을 필요로 할 때, 상대가 연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곁을 지킬 때 연애의 존재를 안다. 또 서로의 마음을 서로 잡아끄는 매력이 주는 인력을 확인하며 서로 연애관계에 있다고 깨닫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 서로를 향하는 몸의 각도로부터 연애의 존재를 안다.


연애의 끈을 당겨서 연애의 존재를 이따금씩 확인하려 든다. 이것으로 연인으로 내 곁에서 연애의 일상을 지키며 사랑스럽게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 잠시나마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모든 시도가 성공적일리가 없다. 연인은 생활을 이유(핑계)로 역할을 뒤로 미루고, 피로감에 지쳐 환하게 웃지도 눈을 맞추지도 않을 수 있다. 이 때 연인이 존재하는 긴장의 땅은 돌연 싸움의 불꽃이 언제일지 모르는 갈등의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다.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회피할 수 없는 불안이 유일하게 남긴 연애의 거소가 긴장이 자욱하게 드리운 땅이기 때문이다. 안개가 드리웠을 때는 조심스럽게 빛을 밝히고, 집중해 앞을 응시해야만 한다. 긴장의 땅은 갈등의 땅이기도 하지만, 집중해야할 땅이기도 한 것이다. 긴장의 다른 뜻이 “마음을 가다듬어 정신을 집중함”을 이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연애의 일상을 지속하는 동안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머무는 긴장의 영역에서나마 연애의 이유를 지키려면 연애의 끈이 당겨진 정도에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긴장을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집중으로 달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갈등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노정한 상태가 아니라, 연애의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좋은 연애를 만들 태도와 행위로 긴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연애하며 긴장을 피하기보다 긴장이 연애에서 갖는 의미를 잊지 않고, 연애에 긴장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연에서 긴장은 연애의 끈이 당겨진 정도에 따라 달리 체감된다. 연애의 끈은 팽팽하기도, 느슨하게도 이어진다. 연인에게 더 큰 역할을 기대할수록, 더욱 큰 매력을 느낄수록 연애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연인을 향한 욕망이 연애의 끈을 당기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그것 이외에 대한 관심이 줄고, 감정과 힘도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연인에 대한 역할 기대 수준, 매력 체감 수준이 클수록 우리는 정신을 집중해 ‘긴장’해야 하는 것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연애의 끈은 강하게 당겨진다. 강한 떨림과 설렘이 연애의 끈을 타고 전해진다. 그동안 규정되지 않았던 존재에 부여된 역할과, 그동안 포착하지 못했던 상대의 매력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연애에 온갖 감정과 힘을 집중하고, 연인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날의 떨림과 설렘,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며 만들었던 애정이 긴장된 순간은 오랫동안 남아 연애에서 희구(希求)하는 꿈같은 추억이 된다.


팽팽한 연애의 끈으로 전해지는 자극이 주는 긴장 상태를 오랫동안 견디기는 어렵다. 연애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끈은 충격을 잘 전달한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작은 관심에 더 가슴 떨리지만, 사소한 무관심에도 절망하게 된다. 연애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수록 연인에게 끌려가는 자신을 지켜 자율성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연인이 한 발짝 물러서면 연애의 끈에 이끌려 한 발짝 다가가게 되어 자신의 선택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연애의 일상을 계속할수록 내 역할을 해내면서도 얼마간 여유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고, 조금 부족해도 서로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처음의 자극이 익숙한 것이 되어 연인의 매력이 가진 인력도 얼마간 줄어들게 된다. 즉 역할 수행의 기술, 노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극에의 적응으로 각자의 자율성을 크게 잃지 않으면서도 연애의 일상을 무리 없이 지속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편안함이 지나쳐 연애의 끈이 늘어지면 위기에 봉착한다. 역할 수행의 기술을 과신해 무례하게 행동할 때 긴장이 풀리고, 연애의 끈은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자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지만, 연인의 존재를 대수롭잖게 여기는 태도를 함축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상대에게 더 이상 어떤 역할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또 과신한 나머지 자신의 매력을 발전시키지 않아도 연애의 끈은 늘어진다. 어떤 매력에서 전해진 자극은 익숙해질수록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편안함에 대해 오판하여 연애의 끈, 곧 긴장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순간부터 연애의 존재가 흐릿해지기 시작해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연인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 없이 긴장을 내팽겨 치려는 연인을 경계해야한다. 긴장을 잃고 편안해지는 태도에는 틀림없이 상대를 대수롭잖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자신의 긴장 상태를 점검해야한다. 연인이 자신에게 긴장하길 바라는 만큼 자신도 긴장하고 있는지 스스로 경계해야한다. 자신의 자아가 지닌 매력과 자신의 매력이 전달될 수 있는 경로를 고민하고, 쇄신하지 않는다면 연애의 끈이 마찬가지로 늘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4.

연애하는 동안 긴장 상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래도록 높은 수준의 긴장감을 버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애가 깊어질수록 조금은 편안해지는 구석이 필요하다. 즉 연애에는 놀라움을 주는 이벤트가 필요하지만, 일상다운 편안함도 필요하다.


연애에서 얼마간 긴장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긴장을 기피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관계에서 긴장은 사이가 나빠져 싸움이 가까워진 상태로 인식되어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된다. 그런데 연애에서 긴장을 피할 수 없다. 연애의 근원적 고통인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길을 찾다 겨우 머문 곳이 복종과 지배 사이에 있는 긴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갈등도, 협력도, 사랑도 있다. 긴장에서 갈등만을 떠올린다면 연애가 디딜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긴장을 갈등으로 읽지 말고 달리 ‘집중’으로 읽어야할 필요가 있다. 연애라는 미지의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잃고 복종과 지배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지 않으려면 앞을 응시하며 방향타를 꽉 쥐어야 한다. 또한 긴장을 결과가 아니라 행위로서 달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때 비로소 자신과 연인이 연애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늘어진 정도에 따라 긴장이 수준이 연애를 윤택하게 한다는 사실이 보이게 될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저, 권태우, 조형준 역, <리퀴드 러브>, 서울 : 새물결, 2013.

**. 소노 아야코 저, 오근영 역, <남들처럼 결혼하지 않습니다>, 서울 : 도서출판리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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