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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un 21. 2017

배려, 불편을 감수하는 일

연애법 열일곱째

연애하며 불편함을 겪는 날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을 연애한다는 이유로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까지 술 마신다거나, 이성친구를 만난다거나 연애하지 않는다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 말고 고민할 것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이 아니고 약속이 아니라면 굳이 누군가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에 쓰던 말을 자유롭게, 때론 조금 과해 보이는 말조차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연애하지 않으면 별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면 그간 생각지도 않은 별 것 아닌 일들이 별 일이 된다. 연애를 시작해서 연인이 생기면, 이 모든 대수롭잖게 생각한 일들을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수많의 연애가 있다. 그만큼 연애를 꾸려가는 방법과 연애 안에서 통용되는 윤리는 다양하다. 그래서 연인 사이에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연애의 윤리"는 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대개 연애하는 동안 서로에게 신의성실의 의무가 암묵적으로 부여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연애하는 동안 상대를 거의 모든 타인보다 소중한 존재로 인정해야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태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연인사이에서 "더 이상 못 믿겠어", "변했어"라는 말이 연인 관계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이며 믿음(신의)와 꾸준함(성실)이 좋은 연애, 믿을만함과 성실함이 좋은 연애상대의 특징으로 어렵지 않게 인정되는 것을 보면 신의성실은 거의 모든 연애를 관통하는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연애에서 신의성실은 각자의 인간적 자존심으로부터 나오고, 연인에 대한 배려로 드러난다. 연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경계하며 연인과의 암묵적 약속을 지키려는 자신의 인간적 자존심이 없다면 신의성실은 존재할 수 없고, 연인의 안정과 행복을 바라며 연인의 마음을 보살피려고 마음을 쓰는 배려로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신의성실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자존심은 마음에 자리하는 탓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배려가 느껴지는 행동과 태도로부터 인간적 자존심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연인관계에서 신의성실은 '배려'로부터 확인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Men acquire a particular quality by constantly acting a particular way... you become just by performing actions, temperate by performing temperate actions, brave by performing brave actions."라고. 결국 우리는 지속적인 배려심 깊은 행동으로 연인에게 자신이 신의성실을 지키는 인간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연인에 대한 배려는 많은 경우에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동에서 나온다.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연인의 반응을 예상하고, 연인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자유를 포기하거나 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때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포기와 변경을 이따금 자신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 있다. 이 때 포기와 변경은 불편한 것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연인에게 불안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연애가 위태로워지불편하기를 거절한다면 연인은 이상 징후를 느끼며 이 같은 거절이 반복되면 상대의 배려, 나아가 신의성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연인이 불안을 느낀다.


연인이 신의성실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고 의심하게 될 때 연애의 근본은 흔들린다. 연애는 상대에게 연인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연인에 걸맞는 대우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결코 신뢰할 수 없는 상대, 성의를 느낄 수 없어 도무지 완전하게 믿을 수 없는 상대와의 약속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것이 된다. 결국 신의성실의 동요, 곧 배려의 부재는 연애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므로 연애하려면 홀로 있을 때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순간을 계속하고 싶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등 관계를 의심할 수 없는 어느 누구를 만나고 싶어도, 때로는 연인이 바라는 행동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감수하는 행동을 통해서 연인에게 자신이 배려받고 있다는 인간적 즐거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많은 경우에 불편을 감수하는 나의 행동에 힘 입어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안정적으로 연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법 열일곱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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