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법 첫째
그와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서 몰라도 상관 없다.
나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공부하였고, 과거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앎과 취향에 관하여 묻지도 않았다. 무엇을 아는지, 그 앎들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라는 문제가 연애를 시작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상대가 가진 교양과 지식, 오랫시간 길러온 상대의 취향이 연애를 시작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또한 그것이 좋은 연애를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던 적도 있다. 교양과 지식, 취향이 어우러져서 이른바 말이 잘 통하는 연인이라면, 나아가 이따금씩 내 관심사에 대하여 연인과 토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애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연애를 통하여 결국 얻으려고 하는, 연인의 나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얻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곧 서로 애틋해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한 기본조건이 교양과 지식, 취향의 일치와 공유라고 믿었던 것이다.
교양, 지식, 취향이 최소한이 아닐지 모른단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연애 후 몇 년동안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믿게 된 결과였다. 연인, 보다 넓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교양, 지식, 취향의 일치와 공유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예컨대 고흐(Vincent Van Gogh)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고흐 회화에서 노란색이 갖는 의미를 알고,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터치감이 담긴 이유를 안다는 점은 그 사람을 알기 위한 실마리가 되며 고흐로부터 풀어나간 대화를 통해 그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 틀림없이 유용하다. 설령 그를 아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호감을 얻고 쌓아나가는 데 틀림없이 유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만드는 힘은 교양, 지식, 취향의 일치와 공유만으로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교양, 지식, 취향이 일치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고, 설령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은 "자아의 견고함"과 상대와 이해와 사랑을 나누는 방법으로서 "사랑법"으로부터 나온다. 예컨대 고흐을 알더라도 자신의 견해와 상대의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가능성조차 두려워할만큼 무른 존재라면, 고흐를 통하여 상대를 들여다볼 시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와 사랑의 힘이 발휘될 계기를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와 사랑을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활용하는데 서툴다면 지식, 교양, 취향의 일치는 단순간에 사라지고 이해와 사랑의 힘은 지속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곧 자아가 견고해서 타인에게 용기있게 다가설 수 있으며,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부서질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고자 할 수 없고, 이해하기 위해 애쓸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힘들다. 또한 갖지 못한 방식으로 타인을 사랑하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좋은 연애"를 하려면 서로 같은 점에 기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서로의 차이 앞에서 의기소침해지거나, 불편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각자가 쌓아온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가 알고 좋아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공감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상대와 같은 수준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곧 같다고 믿은 것에서조차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이 '나'와 '모든 너' 사이의 운명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좋은 연애를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굳건하게 자신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가 낳은 오해를 풀기 위하여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지식과 교양, 취향의 일치와 공유 보다도 좋은 연애를 위해 중요한 능력이다.
좋은 연애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질이자 능력은 결국 "자아의 견고함"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견고함의 출처는 '부모의 사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말을 배우는 것처럼, 행동의 방식과 규범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법조차 배워서 터득한다. 특히 사랑하는 방법은 태어나 처음 접하고, 가장 지속적이며 강도 높은 사랑을 주는 부모의 방법으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배운 사랑법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통제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그 사람은 성공적 사랑의 경험속에서 자아의 견고함을 더욱 강화해나갈 수 있다.
연애는 생활이며, 생활의 대부분은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연애가 지속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반복된 과정이 즐거워야한다. 이야기의 즐거움은 상대를 만났을 때, 상대를 만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좋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떨떠름한 기분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재론컨대 그를 만날 때, 그의 앞에 있는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바로 그것이 연애를 시작하고, 지속하며, 좋은 연애를 꿈꾸는 데 중요하다. 배려하지만 지나치게 신경쓸 것 없이 이야기할 수 있고, 설령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관계가 탈선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의 모습, 곧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견고함과 사랑받고 자란 사람의 느낌이 중요한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경험은 특별하다. 그래서 상대와 나의 교양, 지식, 취향의 어느 지점이 일치하거나,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상대를 호감가는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호감만으로 연애를 결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령 연애가 시간을 잊게 하고, 자신의 눈에서 "객관"을 걷어내버린다고 하더라도 지속성과 밀도가 높은 이 관계에서 틀림없이 차이를 발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이를 연애를 폭파시킬 뇌관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상대를 기분좋은 존재로 만드는 자질, 곧 자아의 견고함과 사랑받은 사람으로서 관계를 풀어갈 방법을 지니고 있다는 그 느낌이다.
곧 왜 연애를 시작하는가? 왜 당신인가? 당신은 내게 기분 좋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애법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