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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Aug 22. 2019

말, 천천히 해야하는 것.

연애법 서른째


모든 정지된 것은 살아있지 않은 것이고, 모든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죽은 관계는 변하지 않지만, 살아있는 관계는 변한다. 관계의 변화는 사람의 행위(action), 그것에 대한 반응(reaction), 그리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맺은 관계는 '말'을 매개로 하는 발화 행위로 이루어진다. 결국 관계의 변화는 말의 변화이며, 말 붙이고 대답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오고 가는 말에 웃음이 가득 찬 날들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답지 않은 말들이었지만, 말하는 동안에는 세상 그 어떤 말들보다 경쾌하고 재밌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쉼 없이 서로의 입을 움직이게 되는 날 말이다. 반면 말이 오고 갈 때마다 가슴이 쿡쿡 쑤시는 날도 있다. 큰 의미 없이 한 말들이겠거니 생각하지만, 그 속에 작은 비수가 담겨있는 듯이 피하고 싶거나, 대차게 받아치고 싶은 날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말을 멈추게 되는 날도 있다. 말하는 일이 자칫 불필요한 오해로 상대와 자신을 할퀴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일을 견딜 힘을 잃게 될 때, 말하는 일을 멈추는 날이 되는 것이다.


연애는 그 모든 말들을 즐기고, 때로는 견디면서 이루어진다. 또 얽히고설킨 말의 실타래를 풀어갈 때, 연애 관계는 진전된다. 문제는 말은 오해를 쉽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완전하게 담은 말, 그런 말들이 오고 가는 대화는 사실상 없다. 그래서 별 뜻 없이 한 말이 연애관계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하고, 생각을 꾹꾹 눌러 담은 무거운 말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말은 불확실성을 언제든지 몰고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말로 이루어지게 되는 연애관계는 언제든지 발전할 수 있는 만큼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말의 힘은 그것이 말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이 합쳐져서 바로 그 사람이 된다. 두 생각이 일치할 때, 정체성은 확고하게 형성된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일은 얼굴과 몸, 그리고 그가 속한 환경을 알게 될 때, 그리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말을 교환할 때 이루어진다. 전자가 물리적 요소를 만나는 일이라면, 후자는 정신적 요소를 만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은 정체성의 정신적 요소를 타인에게 실어 나른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는 말로써 그 사람이 사람과 세계에 대한 태도, 그리고 사람들과 세계 속에서 자리 잡는 방식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한마디 말은 때때로 말하는 사람의 온 정신을 쏟은 무게 있는 것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말이 관계에서 갖는 힘은 세다.


연애관계에서는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가 없다. 이것은 두 가지 고민을 함께 담고 있다. 말하는 일은 듣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발화는 상대에게 말 거는 첫 번째 행위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하는 말에 대답하는 두 번째 반응이기도 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상당 부분 상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는 것은 나의 뜻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고, 상대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연애관계가 깊어질수록 말하는 어려움이 커진다. 서로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거칠고 큰 의미의 단위들로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오해는 잘 없게 된다. 크게 상처 받고, 크게 기뻐하는 일이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많은 까닭이다. 반면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 관계는 세밀한 의미의 단위들이 오고 간다. 잠깐의 방심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린 날 쓴 일기를 요약해서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잘 쓰인 소설은 잠깐의 방심만으로도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수 있고,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물의 세밀한 감정 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게도 된다. 그래서 긴장감을 잃은 독서를 통해서는 그 책의 진가를 알기 어렵고, 그러한 독서 끝에 한 요약은 책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오래된 연인들의 관계도 잘 쓰인 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연인 사이에 오고 가는 말들에 담긴 촘촘한 의미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 연애는 서로에게 가치를 잃은 죽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연애가 깊어질수록 말하는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말을 천천히 해야 할 필요는 있다. 먼저,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을 때까지 말을 아껴둬야 한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는 동안에 상대의 말은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정보들과 어울리게 된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기 전에 말을 하면, 자신이 가진 정보들이 지나치게 개입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상대는 하지 않은 말을 자신은 마치 들은 것처럼 반응하며 말을 하게 된다면 상대는 그 반응을 수용하기 어렵게 되고, 오해가 쌓이게 될 위험은 커지게 된다. 또 말하는 속도를 늦출 필요도 있다. 적절한 말로 신중하게 자신의 의중과 태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연애가 깊어질수록 더 신중하게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서로의 말에 대해 낯설지 않지만, 상대의 말에 대한 지식은 그 말의 쓰임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음과 어떤 단어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능성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 

마음속에서만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꼭 맞는 만큼만 말하고 싶어"


우리가 연애하며 하는 수많은 말들은 브로콜리 너마저가 노래한 것처럼 자꾸 줄기도, 또 늘어나기도 하면서 오해를 키우고, 그 오해들이 켜켜이 쌓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 간다. 결국 문제는 오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또 오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와 닿아있다. 안타깝게도 딱 맞는 만큼의 말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오해하지 않을 만큼의  말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그 노력은 아. 마. 도 천천히 말하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고, 언제든 거기서 머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충분히 듣고 말하는 것만큼, 자신이 가진 단어 중에 가장 좋은 단어로 말하는 것만큼 잘 말하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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