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Jan 25. 2018

성실함, 잊지 말아야 할 것

연애법 스물 아홉째

사소한 말 한마디가 그날의 기분을 결정할 때가 있다. 오늘을 사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휘청거릴 때, 불현듯이 고립되었단 생각이 들 때, 입 속에 수많은 말들이 찰 때다. 곧 행복, 슬픔, 불안과 두려움, 분노가 온몸을 채워서 그날의 온기와 냉기를 밖으로 꺼내놓고 나의 온도를 지키려고 할 때다. 바로 그때, 말로써 꺼내고 다시 말로써 채우며 나의 항상성(恒常性)을 지키려고 할 때, 사소한 말이라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된다.


그때란 어쩌면 특별한 때가 아니라 살아가는 날의 모든 때인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조합이 일어나 그날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해도 우리의 마음은 온갖 감정으로 늘 차게 된다. 얼마쯤은 밖으로 뿜어내지만, 속으로 삭이기에 벅찬 감정의 잔여물이 남기 반드시 마련이다. 잠들기 전의 답답함과 들뜸이 삭이지 못한 그날의 잔여물의 흔적이다. 그것들은 켜켜이 쌓이고, 다음날 잠들 전에 하나 더한 답답함과 들뜸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고 말을 밖으로 꺼내놓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말하고 싶은 욕망은 말을 뱉어내기만 해서는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타인이 나의 말을 들어줄 때에만 충족될 수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신에게 눈 맞추고, 자신을 향하여 몸의 각도를 틀고, 성실하게 답해줄 때 경청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타인의 한마디 말에 민감하고, 취약한 존재이다.


“경청은 개인의 항상(恒常)적 삶을 보호하는 '보호장치'와 같다.”

<경청에 대한 다른 글>
경청, 다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https://brunch.co.kr/@karmarete/66)
경청II, 어떻게 들을 것인가 (https://brunch.co.kr/@karmarete/81)


모든 타인에게 오늘 해야 할 말을 모두 꺼내놓을 수는 없다. 그 누구도 나의 항상적 삶을 위한 발화에 대하여 경청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발화자인 나와 경청하는 타인의 결합은 우연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의 말의 얼마쯤은 입 속을 늘 맴돈다.


우리는 우연한 결합이 아니라, 의무로 맺어진 결합을 찾는다.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의 한계에서 벗어나길 갈구한다. 말하고 듣는 관계, 곧 의사소통의 안정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지키기 위하여 경청할 의무를 짊어져줄 사람을 찾는다.



“말이 통하는 사람”

“나에게 눈을 맞추고, 나를 향하여 몸의 각도를 틀고, 성실하게 답해주는 사람”



우리의 말에 경청할 의무를 나눠지는 사람, 연인이다. 경청할 의무로 맺어진 안정적인 토대, 연애다. 우리는 연애하며 사소한 농담에서부터 삶에 대한 숙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말하고 듣는다. 연인에게 언제라도 말할 수 있고, 연인의 말이라면 언제라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암묵적으로 경청의 의무를 나눠진다. 그리하여 연애의 울타리 안에서 입속에 맴도는 말, 말에 남은 감정의 잔여물이 해소된다. 그래서 연애 안에서 두 사람의 항상성이 유지된다.


연인의 지나친 침묵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에 위기감을 느낀다. 지나친 침묵은 의사소통적 관계가 갖는 가치에 대한 연인의 믿음에 대하여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경청하지 않는 태도는 의사소통적 관계의 파국을 예감하게 만든다. 곧 의사소통적 연애 관계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는 불성실은 연애가 더 이상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완전한 토대라는 믿음에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성실해야 한다.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일상을 공유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각자의 방식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은 누구나 같다. 일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공감의 토대가 무너지고,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다. 또 경청해야 한다. 곧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말의 길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를 밝히지 않고, 말을 듣고도 침묵하고, 단답식으로 답한다면 성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실해야 한다.


연애에서 사소한 불성실이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