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Jul 10. 2017

경청II, 어떻게 들을 것인가.

연애법 열여덟째.

    경청(傾聽)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지키기 위하여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이전에 논급했듯이 경청은 자신과 다른 타자의 세계를 존중하므로 자신이 타자에게 결코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는 암묵적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경청하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는 이가 맞물리지 않았는데 톱니의 모서리에 걸쳐서 간신히 돌아가는 어긋난 톱니바퀴들의 관계와 같고, 크림파스타가 먹고 싶은데 정통 까르보나라를 사주며 "이게 참 맛이야"라며 파스타의 세계에 입문시켜줬다고 너스레를 떠는 상대와의 대화와도 같다. 곧 함께 돌아가는 것이 톱니들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크림파스타가 먹고 싶은 날에 그저 파스타이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이 목적을 오인한 상태에서 제대로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맞물려 제 힘을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톱니바퀴의 목적이고, '크림'이 크림파스타가 먹고 싶은 날의 목적이니까.


    경청이란 상대가 내놓는 모든 자료(data)를 듣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경청은 상대가 내놓는 모든 자료 중에서 진정한 의도가 담긴 자료를 모아 유의미한 정보(information)를 생산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경청은 상대의 말에 온전하게 집중하는 활동인 동시에 상대의 어떤 말을 가려듣는 선별적 집중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를 하면 스스로 집중하고 있다고 느끼더라도 연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들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상대가 내놓는 말을 모두 늘어놓고 '의미'를 찾다가는 도무지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처리능력을 넘어서 자료가 범람할 때, 1)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료를 편벽하게 취하거나, 2) 그동안 쌓아온 상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자료를 선택적으로 취한다. 모두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며, 자의적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오인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문제는 편벽한 자료 선택으로 인한 오해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처음부터 갖고 시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어떻게 처음 만나고, 매일 새로운 사람과 연애하며 말의 범람 속에서 의미있는 말만을 뽑아 의도를 읽을 수 있겠는가?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서 여성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닉(맬 깁슨 분)이 달시(헬렌 헌트 분)의 속마음을 읽을 줄 알면서도 그녀가 속에서 모든 말들을 꺼내놓을 때까지 '경청'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의 모든 말을 듣기 전에는 무엇도 알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모든 말을 들은 적도 없고, 우리의 대화가 오가는 한 단위의 대화 속에서 상대의 머릿 속에 떠도는 모든 말을 닉처럼 듣지도 못한다. 결국 우리는 상대의 뜻을 충분하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의 일상을 보내야한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해하려고 애써서 더 큰 오해를 낳더라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서로를 읽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에만 지금이란 소중한 시간을 아끼며 좋은 연애를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여유'가 필요하다. '척'하면, '척'이란 이심전심은 경험이 만든 결과이지, 수많은 연애의 일상이란 경험을 만들 수 있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유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상대에게 주고 자신도 그에 맞춰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도 더 필요한 것들이 있다.


    1)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상대의 모자란 이해력에 섭섭해하고, 힐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2) 질문이 더 필요하다.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였거든 상대에게 질문해야한다. 자신은 상대가 말하지 않은 말의 공백을 온전하게 채울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질문해야한다.

    3) 프루던스(prudence)가 필요하다. 서로의 말 앞에서 신중해야하고, 자신의 반응을 내놓기 전에 신중해야한다. 나의 모자란 설명력과 이해력을 받아들이고 온기가 전해지는 말과 눈빛으로 상대를 대해야한다.


    좋은 연애를 위해서 경청해야한다. 모든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려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유가 필요하며,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질문, 그리고 프루던스가 우리 연애에 필요하다.



나와 당신의 연애#18

작가의 이전글 경청, 다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