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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1. 2017

불안, 연애의 상수.

연애법 스무째

I.


연인의 의미가 커질수록 불안도 커진다. 그가 처음 내 세계의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 세계에서 차지한 면적은 발 크기 하나 만큼에 불과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의 발자국은 내 세계에 놓인 길이 된다. 그의 수많은 발자국이 모여 내 세계를 탐색하는 내 여정이 이어지고, 그 여정이 자신을 발견하고 아는 여정이 된다. 내 존재의 의미와 깊이 연결된 그가 갑자기 내 세계에 들어왔던 것처럼 홀연히 떠나버리면 나는 길을 잃어서 온전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그만큼 두렵고,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연애에서 느끼는 불안은 일종의 지위불안(status anxiety)이다. 연인에게서 차지하는 현재 지위와 기대 지위가 불일치하고, 현재 지위가 기대 지위에 이르지 못할 때 불안해진다. 기대지위에 자존감을 지키고, 일종의 유기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계가치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지위가 기대 지위에 이르지 못할 때 자존감이 떨어지고 유기불안이 초래되어 불안이 야기되는 것이다. 요컨대 연인에게 자신의 생각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할 때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 = (기대지위) * (현재지위) and (불안) > 1


누구나 불안을 회피하고 싶다. 더욱이 너무나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에서 초래되는 불안은 그 어떤 불안보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너무나 깊숙이, 그리고 본질적으로 연애에 자리 잡은 것이고, 너무나 얽혀 있어서 벗어나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안은 어디에 있고, 왜 벗어나기 어려우며, 어떻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II.


불안의 출처는 크게 두가지다. 불안은 안정에 침습하는 권태(倦怠)와 변화가 불러오는 동요(童謠)에서 온다. 권태에서 오는 불안은 두근거림과 뭉클함이란 자극이 얼마쯤 가셨을 때 엄습한다. 가슴 뛰게 만들었던 자극이 빈 자리에 약간의 지루함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을 때, 상대도 그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동요에서 오는 불안은 사랑을 느끼게 만들었던 연애의 균형이 어떤 변화에 의해서 깨질 것만 같을 때 온다. ‘좋은 때’를 ‘좋았던 때’로 회상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만 같은 부정적 변화에 불안이 소재하는 것이다.


두 출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결국 현재지위의 하락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같다. 권태에는 연인의 가슴을 더 이상 뛰게 만들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 그것을 인식하는 상대에 대한 우려, 요컨대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과거보다 낮아진 자신의 현재 지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 또 동요에는 변화된 상황에서 균형이 요동치며 변화된 상황에서 연인이 필요로하게 될 실재하지 않는 존재와 비교되어 내 현재 지위가 하락될 지 모른다는 부정적 인식이 담긴 것이다.


연애에서 느끼는 불안의 출처는 다소 모순적으로 보인다. 권태는 변화 없이 반복되어 무감한 현실에서 생기고,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반대로 동요는 지나친 변화가 오랜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든 상태에서 생기고, 극복을 위해서는 안정이 필요하다. 즉 권태가 변화를, 동요가 안정을 필요로 한다는 데서 모순성이 발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모순관계가 결코 아니다. 대신에 연애의 일상이 불안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좋은 것을 오래도록 반복하면 권태를 피하기 어렵고, 선택의 연속이 삶에서 이따금 선택할 때마다 변화를 결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의 일상은 둘의 존재만으로도 온통 충만한 시간이 많지만, 날 선 대립으로 맞서는 시간도 없지 않다. 어떤 날은 대립이 연애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시간도 있다. 충만한 시간조차 완전한 안정을 찾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안정을 금세 권태로 받아들이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연애의 일상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III.


연애를 계속하며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다.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연애를 끝내야만 한다. 그러나 연애를 끝내는 것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연애에서 불안이 “영(0)”으로 수렴하는 상태를 지향한다면 불안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상태란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까.)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어도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가장 확신한 방법은 불안을 느끼며 연인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싶은 자신의 갈망에 대한 연인의 응답을 듣는 것이다.


문제는 응답받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이 될지 자신도 모른다. 불안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을 어떻게 대해도 상대가 던지는 메시지에 만족하지 못한다. 불안의 순간에 줄어든 여유 때문에 상대에 대해서 인색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유를 찾을 때 자신이 받아들이는 마음의 홈은 동그라미라서 세모도, 네모도, 다른 어떤 모양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불안으로 여유를 잃었을 때 일그러져 각 진 모양으로는 딱 그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사랑으로 응답해줄 상대가 응답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을 때 생긴다. 삶에는 긴장과 이완이 공존한다. 한가지 일에 오롯이 집중해도 해낼 수 있을지 확신 못해서 긴장하는 때가 있는 반면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잘 풀려서 모든 것에 자신감을 갖고, 여러 일에 충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이와의 시기도 있다. 전자의 상태에서 사랑으로 응답하기 어렵다. 대신에 연인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해주길 바란다. 사랑해주길 바라는 두 사람의 갈망이 부딪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이 때 연애는 불안으로 교착상태에 빠진다.




IV.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모두에게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유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여유를 갖기 위해서 나와 연인의 불안에 대해서 균형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나의 불안과 연인의 불안이 상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불안의 총합) = (자신의 기대지위)/(자신의 현재지위) * (상대의 현재지위)/(상대의 기대지위)


내가 불안한만큼 연인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의 불안에 사로잡혀 연인의 불안에 감응하지 못하는 자폐적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불안에 함몰될 때 휘몰아치는 자신만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생각, 결국 모든 것이 연인에 의해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 예언에서 자신을 스스로 꺼내야 한다. 불안에서 스스로 얼마쯤은 벗어나야만 연인이 자신의 불안을 걱정하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보이고, 비로서 연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마음에 감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불안 때문에 연애에 힘겨워하지 않으려면 불안이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인의 불안을 균형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내가 불안한만큼 상대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얼마간 여유를 갖고 함께 사랑을 이야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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