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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19. 2017

동료애, 연애 이유의 버팀목

연애법 스물네째

우리를 친구라고 칭하는 것이 싫었다. 연애의 목적은 협소한 의미에서의 ‘사랑’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랑 아래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랑들이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성적 사랑인 에로스(eros), 혈족애를 뜻하는 스토르게(storge),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philia), 이타적 사랑 아가페(agape) 등등. 그중에서 굳이 꼽아야 한다면 ‘에로스’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작 중인 우리 연애를 아주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것이 ‘에로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에로스가 연애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 연애를 시작하고, 지속시키며, 끝내는 원인이 되는 그 욕망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음이 에로스에 대한 열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곧 연애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은 ‘나는 당신을 통해 쾌락을 느낀다.’라는 형태라고 나는 믿는다. 단언컨대 에로스는 연애의 충분조건이다.



에로스가 없는 연애? 글쎄.



연애의 일상이 깊어질수록 에로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누구도 항상 완전한 쾌락을 선사할 수 없으니까. 연애의 일상이 깊어질수록 서로 익숙해져서 상대가 주는 자극 - 특별히 에로스적 자극 - 에 무뎌지기 쉽다. 곧 연애에서 에로스라는 이름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끌어당김(pull factor)이고, 또한 밀어냄(push factor)으로 너무나 쉽게 요동치며 존재한다. 그래서 좋은 연애를 오래도록 지켜가려면 다른 형태의 사랑이 얼마간 필요하게 된다.


에로스와 더불어 필요한 사랑은 동료애다. 연애의 일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업자로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상대의 힘겨운 일상을 안쓰러워하고, 좁은 어깨와 품이나마 연인을 위하여 내어주며 공감하는 사랑의 형태 말이다. 동료애는 에로스가 요동칠 때, 연애의 이유가 완전히 탈각되지 않도록 돕는다. 곧 동료애는 에로스가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기회 또한 찾게 돕는다. 동료애가 에로스가 저점에 있을 때, 단단히 버티며 연인의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의미를 찾게 되면 우리는 연인의 새롭고 중요한 의미만큼이나 새로운 자극을 연인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재론컨대 다시금 에로스를 높이는 사랑들의 유기적 관계가 좋은 연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동료애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대화 없이는 생겨나기 어렵다. 특히 나를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연인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동료애를 키워갈 수 있다. 곧 연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서로 편안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에로스는 연애의 이유로서 충분하다. 다만, 연애의 일상을 오래도록 지속하고, 좋은 연애를 꿈꾸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토록 변덕스러운 에로스를 지켜낼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동료애가 도움을 준다. 동료애는 에로스가 요동칠 때, 굳게 제 자리를 지키며, 에로스가 변덕 때문에 탈각하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그래서 동료에서는 연애의 일상을 보내며 꼭 필요한 사랑이 더불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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