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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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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an 31. 2018

안경

익숙함에 대하여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발랐다. 콧잔등 위에 얹혀진 안경을 의식하지 못했다. 로션이 가득 발린 손으로 안경까지 문질렀다. 지문이 렌즈에 잔뜩 남았다. 시야를 가렸고, 앞이 뿌옇게 변했다.


익숙함은 오랜 편안함인만큼 오랜 소홀함이기도 하다. 어느 날의 어색함은 내가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편안함이 된 것이다. 나는 내 몸 같이 함께 해서 본래 내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내 생활에 자리하게 된 나와 안경에 대한 기억을 잊었고, 그래서 안경의 의미와 가치에 소홀해졌다.


익숙한 것을 당연하다고 여길 때, 금세 익숙한 그것에 소홀하게 된다. 안경이 없다면 자국이 남아 뿌연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의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나의 모자람을 익숙함을 이유로 잊고, 안경의 존재에 소홀해진 것처럼.


무언가 익숙해질 때, 사실은 나에게서 얼마쯤은 유리된 내가 된다. 내게 익숙하고, 당연하고, 그래서 소홀한 것을 걷어낸 다음에 존재할 나를 상상하니 불현듯 내가 누구인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 모든 당연함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걱정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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