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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24. 2018

윤식당

관조하는 삶.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식당>을 좋아한다. 낯선 곳에서 노동하고,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땀 흘리며 바쁘게 일 하지만, 휴식의 달콤함을 놓치지 않고, 노동에 파묻혀 삶의 여유를 잊지 않는 모습이 퍽 부럽기까지 하다.

웃고, 부러워하다가 문득 "왜 재밌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웃기기 위해 준비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결코 웃을 수 없었는데, 왜 웃기려 들지 않는 이 프로그램에 웃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내게 파안대소를 잊지 않게 만들었던 수많은 유머와 슬랩스틱은 이제 더 이상 웃기는 것이 되지 못했다. 자신과 타인을 희화화 하는 말과 몸짓에 냉소하지만, 웃기려 들지 않는 데 밝게 웃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윤식당>이 보여주는 삶과 대조되는 내 삶을 보며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핵심은 삶에 대한 '관조'다. 

열일곱 살 이후부터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바삐 살았다. 
완성된 삶을 위해 고민하고, 계획하고, 행동하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성과가 있던 때조차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서 희열에 젖어 잠깐 마음을 풀어놓은 마음조차 빨리 다잡았다. 그래서 지난 일상을 돌이켜보고 내 삶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보는 관조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윤식당>의 인물들에게서는 관조가 보였다. 그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쁜 일과에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낯선 공기로도 금세 생각을 바꿀 줄 알았다. 다음날을 걱정을 했지만, 맥주 한 잔, 포도주 한 모금에 지난 하루의 삶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것의 아름다움을 치하했다.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지켰음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미소와 따뜻한 시선 모두가 자신의 일상을 관조하는 태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조를 잃었다. 휴식조차 약속과 계획 등 적극적인 행동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었다.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지만, 열심히 산 자신을 돌이켜보고 주어진 삶에 감사할 여유를 갖는 시간은 하루의 일과가 대개는 되지 못한다. 다시 출근하고, 다시 일해야 할 걱정을 떨칠 수 없이 피곤에 절은 몸을 눕힌다.

여유가 부러움이 되는 것을 넘어, 즐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무엇이 되어 버렸다. 타인의 여유는 자기 삶을 비관하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쾌락을 만드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관조를 잃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 존재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그것의 핵심인 관조적 태도를 보며 웃게 된 것이다. 다만, 그 순간에도 "연예인이니까, 돈 많으니까"를 입 속에서 떨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웃기려 들지 않는 모습에 웃음이 났던 것이다. 타인의 관조가, 타인의 여유가 아주 특별한 것이 되고, 타인의 건강한 일상이 내 사람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타인의 것이 부러운 한편으로 특별히 유쾌한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을 일단락 짓고, 웃은 내가 조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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