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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24. 2017

기억, 즐거움의 인출장소

연애법 열째

‘Memory’ labels a diverse set of cognitive capacities by which we retain information and reconstruct past experiences, usually for present purposes.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연애에서 만드는 기억이란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세계와 세계가 조우하고, 결합하고, 때때로 충돌하며 만든 연인이라는 거대 세계가 연애의 시계 위에 수놓는 이야기가 어떻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은 상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기억이다. 이 기억은 마천루와 대양과 거대한 산, 웅장한 미술과 장엄한 음악을 함께 경험해서 연애의 시간에 새겨놓은 흔적보다 생활에서 상대를 관찰해서 발견한 소소한 무엇이다. 꾸밈없이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에 진정한 그의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곧 나는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곳에서 추억을 나눈 기억과 새로운 활동을 하며 웃고 즐겼던 기억의 의미를 간과하지 않지만, 상대만이 가졌다고 믿게 되는 일상 속 표정과 행동에 대한 기억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 나는 <라라랜드>를 예찬하는데 “그 영화 별론데”라고 대차게 이야기하면서도 낯을 가리며 눈을 맞추지 못하고, 쑥스러워하며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을 했던 것.
- 이야기할 때 감정에 따라 이마가 꿈틀거리고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
- 술을 마실 때 신발을 벗고 이따금 양반개고 앉는 것.
- 꽤 추운 날에는 “추워, 추워”하고 말과 말 사이에 시간을 조금도 두지 않지만 덜 추운 날에는 그 사이에 여유가 넘친다는 것.
- 전화를 걸다가도 이따금 한참동안 우두커니 자신의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듣도록 하는 것.
- 아침에 전화 걸어도 잠결에도 화내지 않고, “응? 응?”하고 상냥하게 대답해주는 것.
- 놀랍기보다 당황스러울 때, “오잉"하고 감탄사를 쓰는 것.
- 부끄러울 때, 배시시 웃으며 “됐거든”하고 이야기한다는 것.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에서 숀 교수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숀은 윌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Sean : Maybe you're perfect right now. Maybe you don't want to ruin that. I think that's a super philosophy, Will. That way you can go through your entire life without ever having to really know anybody. My wife used to fart when she was nervous. She had all sorts of wonderful idiosyncrasies. You know what? She used to fart in her sleep. Sorry I shared that with you. One night it was so loud it woke the dog up. She woke up and gone like "oh was that you?" I'd say yeah...I didn't have the heart to tell her...Oh God...[laughing]


Will : She woke herself up?


Sean : Yesssss. Oh Christ....aahhh, but, Will, she's been dead two years and that's the shit I remember. Wonderful stuff, you know, little things like that. Ah, but, those are the things I miss the most.





    칼튼 피스크(Carlton Fisk)의 홈런을 포기하고 “꼭” 말 걸어봐야만 했던, 너무나 사랑했던 그녀가 방귀뀌는 소리에 놀라는 의외의 장면을 보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이겠는가? 그것보다 사랑하는 상대의 모습과 의미를 전유(專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을까?



"Memory seems to be a source of knowledge."



    나는 연인의 소소한 기억이 애인과 나 사이에 놓인 공간을 좁히고, 좁은 공간마저 온기로 채우는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큰 연애의 자산이다. 내가 상대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도록 하는 매력이 담겼으며, 매순간 애인을 사랑스럽게 하는 마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상대에 대한 이와 같은 기억들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스스로 확신하도록 하는 증거이기 때문에 연애의, 혹은 사랑의 리트머스로서도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다. 결코 사랑하지 않는 대상-혹은 증오하지 않는 대상-을 관찰할 이유는 없으니까. 요컨대 기억은 연애에서 에너지이며, 연애의 의미를 파악하게 하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기억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연애하는 동안 애인을 관찰하고 발견하여 기억할 것이다. 많은 기록을 사진으로, 글로 남길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에 새겨진 기억들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기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저 부지런히, 성실하게 기억을 만들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활동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화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당신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기억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의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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