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법 열한째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까, ?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바랄까, ?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바랄까, ?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를 중심으로 무엇을 하고, 바라며 맺어진 관계가 연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이 질문들이 연애에서 우리가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묻고, 답하여야하는 거의 모든 질문이다. 이와 같이 질문하고 답하는 일련의 행위는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화되어 연애의 토대를 구성한다. 따라서 매우 별스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와같은 질문을 묻고 답하는 과정은 아주 별스러운 것이다. 이 질문들을 대하는 나와 당신의 방식에 따라 연애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곧 이 질문에 묻고 답하는 행위 그 자체, 그리고 묻고 답하는 세세한 내용이 이미 결정된 관계의 질(質)을 나타내고, 앞으로의 연애를 진전시키거나, 퇴보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주 별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행위(action) = 욕망(desire) + 신념(belief)
"한 이유가 한 행위를 합리화하려면, 그 이유는,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에서 보았거나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우리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행위자가 원하거나, 바라거나, 소중히 여기거나, 더 없이 좋아하거나, 책임감을 느끼거나,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의무감을 느끼거나, 기호에 맞다고 여겼던 행위의 어떤 면모나 결과나 측면을 우리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바로 그 행위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고만 말해서는 그가 왜 그것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의 행위와 관련된 무엇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는 지적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무언가를 할 때는 언제나 그는 (a) 어떤 종류의 행위에 대해 모종의 긍정적 태도(pro attitude)를 지니며, (b) 자신의 행위가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믿고(또는 알고, 지각하고, 알아차리고, 기억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 도널드 데이빗슨(Donald Davidson) 저, 배식한 역, "행위, 이유, 원인", <행위와 사건>, 한길사, 2012, pp.50-51.
먼저, 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려 시도하지 않는다면 연애는 형해화(形骸化)될 위기에 처한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질문과 답함의 부재는 고민의 부재인 것이다. 연애에서 연애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하지 않는 것은 연애의 현재,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욕망, 과거에 대한 해석 의지 등 연애를 생동하게 하는 힘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관계는 행동(action)으로 짜이며, 행동은 욕망(desire)과 신념(belief)로 설명된다. 기대, 욕망, 의지 등 욕망과 신념의 부재는 행동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불분명한 행동은 관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질문이 연애에 존재한 시점에서만 연애가 존재할 뿐, 그 이후는 연애는 형태가 없어져 사라진다. 결국 이 질문들을 제기하고 답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도가 존재하였던 과거 어느 때의 연애만 남아 형상을 갖추고, 현재의 상태는 형해화되고 마는 것이다.
연애를 만들어갈 힘을 포기한 순간 멈춰서는 것이 아니라 연애는 응집되어 단단한 것에서 형체를 잃은 그저 '무엇'이 되어 생명을 잃어간다.
다음으로 이 질문을 해석하는 방향은 연애의 양상에 영향을 준다. 무엇을 바라고, 해주어야할까,를 고민할 때 많은 경우에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연애에서 나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기대는 상대의 기쁨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때, 연애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연인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더한다면 연애에서 쓰이고 기억될 이야기가 늘어갈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늘어날 수록 연애는 즐거운 것이 된다. 곧 좋아할 것(행동)에 대한 고민은 연애의 즐거운 이야기를 만드는 '형성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연애에 풍성한 즐거움을 더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애의 즐거움을 찾는 일이 중요한만큼 연애를 유지하고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고민하는 일도 중요하다. 곧 형성적 질문만이 무엇을 바라고, 해줄까,라는 질문의 유일한 해석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단언컨대 "하지 않아야할 것을 하지 않음"도 질문에 포함되야 한다. 연애를 유지하고, 앞으로도 유지하도록 만드는 데는 상대가 나에게 좋은 것을 해주리라는 기대만큼이나 나를 괴롭게 만들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충족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상대와 함께 할 때 결코 상대의 행동 때문에 불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상대가 싫어할 것을 찾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연애를 충돌없이 안정적인 관계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상대가 싫어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이 '상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상식이 공유될 때, 연인 사이에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상대의 행동을 이유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쉬워질 것이다. 요컨대 상대에 대한 '존중' 혹은 '인정'이 보다 쉬울 것이다. 곧 상대가 싫어할 것(행동)에 대한 고민은 연애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좋아할 행동에 대한 고민(형성적 질문) -> 즐거움(감정, 욕망)의 충족 -> 풍성한 연애
싫어할 행동에 대한 고민(안정화 질문) -> 상식(예의)의 일치 -> 안정적인 연애
요컨대 우리가 연애를 좋은 연애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균형적으로 유지해야할 것이다. 전자가 부족하면 연애가 심심해지고, 권태로워질 수 있다. 반면 후자가 부족하면 싸움이 벌어질 위험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에 치중한 방식으로 질문하고, 답하며, 행동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연애하는 동안 현재의 연애가 좋은 연애로 나아가길 소망한다면 우리는 쉬지 않고 질문해야할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바라며, 상대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것인가 고민하여야만 연애는 생동감 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위한 질문들은 상대가 좋아할 것과 상대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싫어할 것을 균형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이다. 연애가 안정적이며,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면 그 연애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이 될 것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균형적으로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좋은 연애로 향하는 정도(正道)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연애법 열한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