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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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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ul 27. 2018

옷장

나에 대한 집중.

옷장을 본다. 생활과 삶을 떠올려본다.




시간은 나와 별개로 항상 흐르기만 한다. 나는 기껏해야 시간으로 생활을 재단할 뿐이다. 물론 거기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으로 재단한 생활
 낱낱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바느질해 이어서 '삶'이란 이름의 옷을 만들게 된다. 촘촘하건, 성기건, 균형감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옷 같은 것을 만든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어떤 존재가 된 것처럼 여기고, 그러한 존재로서 길을 걷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옷을 입고 길을 걷는 나를 어떤 존재로 보거나, 보지 않는다. 


옷은 날개가 되기도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거적에 불과한 것이 되기도 한다. 비단, 옷 자체가 문제여서 옷의 가치가 달리 매겨지는 것만은 아니다.  더위와 추위, 사람과 사람, 벽과 벽, 곧 계절과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내게 꼭 맞는 옷이더라도 만족스러운 옷이 되는가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의 만족보다 먼저 티피오(Time, Place and Occasion)를 고민하게 되는 날이 적지 않다. 옷을 입고 집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밖으로 나가야 하고, 누군가를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내게 편하고 예쁜 옷보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을 더 많이 하고서 옷을 입는다.

티피오가 먼저일 때, 나의 허전한 옷장을 고민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옷장에 옷을 걸어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나의 생활과, 나의 삶에 대해서 어두운 얼굴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미 나는 편안해서 자주 찾고, 충분하지는 않아도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구석을 드러내 주는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말이다. 괜히 내 옷이 어색하고, 누추한 것처럼 느끼는 순간을 사람들 속에서 마주하는 바로 그때 어둔 표정을 하게 된다.

내 옷, 내가 생활과 생활을 이어 만든 내 옷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삶이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이끄는 것만은 아니지만, 굳이 내가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고 꾸역꾸역 자리를 채워야 할 만큼 내 뜻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곳에 맞는 옷이 없는 내 옷장이 그곳이 내가 있을만한 자리가 아님을 알려주고, 옷의 부재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 경우도 많다. 또 불변의 진리같이 내 옷장은 항상 충분하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유행은 바뀌니까. 결국 바깥을 중심에 두고서 밀려드는 불만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내가 입고 있는 내 옷, 내가 가진 옷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옷장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몇 해 전 옷장을 채웠던 형형색색의 옷들이 사라진 자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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