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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14. 2020

다시 만난 날을 추억하며

우리사2 재회의 날

대학시절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만난 우리는, 그로부터 열다섯 해가 지난 것을 기념하여 다시 만났다.



스무 살에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 그리고 이십 대로부터도 크게 한 발짝 물러서게 되었다. 우리가 거기서부터 멀리 떠나온 만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신촌(新村)'의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그때를 기억하게 해주는 남아 있는 몇 곳의 간판만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가운데서 간신히 우리가 보낸 시절을 부여잡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것 같던 신촌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캠퍼스를 떠난 그 날 이후로 우리 다음으로 이 공간을 채운 누군가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제의 우리로서는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던 매 순간, 놓치고 싶지 않던 우리가 사랑했던 공간에 대한 ‘소유’의 의미는 과거로, 다시 과거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젊음은 신촌에 자취를 남길 만큼 커다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형도 선배의 '돌층계'처럼 커다란 의미를 새기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젊음의 첫 장을 넘길 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것을 넘는 모두 혹은 그 근사치의 어떤 것도 남기지는 못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여렸고, 미약했고, 때로는 지리멸렬한 것만 같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서툰 젊음이 남긴 발자국이 사라지지 않은 신촌을 잃지 않고 부여잡고 있었다.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캠퍼스를 떠나는 날까지 우리가 보낸 모든 시간들 중에서 간신히 남아, 기억 한쪽 편에 겨우 자리 잡고 있는 극히 일부의 것이었다고 해도. 거기에는 오늘을 살게 해 준 발랄하고, 뜨거웠던 추억과, 꺼내놓지 못할 만큼 풋내 나던 지난날의 나와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제는 굳이 열어보지 않고 싶은 못된 상처까지 한데 섞여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지난 기억과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형상들이 길게 늘어서서, 우리가 스무 살일 때부터 터 잡고 있었던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기억하지만, 틀림없이 지금도 잊히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 그리고 걷다가 멈칫 멈춰 선 좌표에서 각자의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기억을 서로에게 굳이 상기시키지는 않았다. 얽히고설킨 기억이 내가 잡아당긴 한 올 때문에, 너저분하게, 너무도 쓸데없이, 오늘에 펼쳐질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네 것이 네 것인지, 내 것이기도 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탓이었을 것이다. 아주 기억에서 잊힌 것이기 때문에 별달리 꺼내놓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어제의 묵직한 의미가 오늘의 가벼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두 익숙한 것이지만,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십 년을 넘게 보지 못했던 얼굴도 있었다. 몇 해를 만나고, 그 곱절의 시간을 별개로 살았다. 서로를 몰랐던 시간이 알고 지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앎’과 ‘모름’은 결코 등가 일리 없다. 모르고 지나쳤을 수많은 사람들 대신에 아주 우연하게 우리는 만났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말 없이도, 우리는 벗이었고, 적어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갑작스레 서로를 불러 세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주 오래간만에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잔을 채웠다. 제법 깐깐한 입맛이 된 나를 잊고, 한 점, 한 점 즐거운 마음으로 배를 채웠다. 여전히 서툰 오늘의 나와, 방황을 떨쳐내지 못한 삶의 경로와, 외딴곳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은 사람 속 내 자리와, 나를 떠나 너를 생각해야만 하는,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볍지 않은 무게가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마음을 풀어두고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캠퍼스 첫발을 내딛던 그해로부터 열다섯 해를 기념해 다시 만났다. 멀리 왔지만, 서로의 앞에 있는 사람 덕분에 사라지고, 잊힌 존재만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서투르고 미약했지만, 여리고 예뻐서 애틋했던 2005년의 우리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것까지도.





대학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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