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푸르름을 내일을 위해 써야 해.
고된 일상이라 힘을 잃어서 도저히 잘할 수 없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은 내게도 그랬다. 매월 시험을 쳤다. 내게 전부와 같았던 성적표의 숫자가 다달이 찍혀 나왔다. 나는 그것으로 나를 가늠했다. 좋은 성적을 받은 후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무엇도 잘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게 가끔은 부당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가금 허공을 향해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허공을 향해 던진 장탄식과 분노 가득 찬 고함을 나는 달리 뱉어내야 했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 이따금씩 한다. 그때 힘든 일상을 고깝게 여겼던 마음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야 할 내게 순간의 해방감과 끝나지 않는 갑갑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 갑갑함 때문에 나는 쪼그라들었다. 쪼그라든 내게 일상은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 되었다.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위로의 말 보다 독려의 말을 했다.
"쉽지 않은 일상에 단 일 그램의 무게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보내는 일이 너무나 무겁게, 고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다만, 그렇게 조금씩 무지(無知)나 실수가 더 이상 자신의 과오를 덮어줄 수 없는 어른이 된 시점을 준비해 나가는 것 같아요. 조금씩 어깨에 진 짐의 무게를 늘리고, 그 무게를 지고서도 충분히 자신의 일상을 잘 살아갈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거죠."
마음은 논리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부지런히 달리 먹어야만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살도록 만들면, 쉽게 그 벽을 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로 벽을 뚫어 길을 터줘야 하는 것 같다.
마음의 길을 만드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이 되어야만 마음에 높인 담벼락에 긁힌 상처와 찍힌 흉터만 남기고 원점으로 돌아오기만 하는 일상을 조금 더 잘 피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나는 그에게 하고 싶었다.
너는 어리지만, 아직은 푸르름을 머금은 소년이지만, 그 푸르름은 너의 내일을 부지런히 키우기 위한 것이며, 결국 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네 마음의 무게를 견디고, 허공을 향한 푸념을 오직 혼자인 순간에 해야만 하는 날을 결국 마주하게 된다. 그날을 위해 내게 주어진 기회를 너를 위해, 너의 미래의 어른 됨을 위해서 써야 한다. 너는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