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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24. 2021

훌륭함 따위

이제 모두가 자신의 편리와 편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는 줄 알았다. 더 이상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착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러운 삶의 방식이 이미 된 줄 알았다. 훌륭하게, 또 착하게 살 필요 없다고, 그렇게 살면 손해만 입는다고 떠드는 세간의 말들이 세상을 가득 채운 삶의 실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훌륭한 삶의 가치 절하는 결국 타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삶,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세태를 부정하고 싶었다. 겸손, 양보, 헌신과 같은 삶의 태도가 가치 있는 것으로, 미덕으로 여전히 인식되기를 바랐다. 인간이 인간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무엇으로 인간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스스로 무엇으로 인간답다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 타자의 인정(recognition)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듯이 천착하며 공부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세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인간이 과연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국에 인간다움의 거대한 포기를 시작하는 지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내 생각과는 약간 달랐다. 고등학생들을 네 해째 가르치고 있다. 봄부터 시작한 수업의 종강을 맞이하여 아이들에게 꿈, 혹은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과는 다른 것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에 그리고 있었고, 또 그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꿈과 목표를 생각함에 있어서 '공적인 것'을 멀리 두지 않았다. 자신만을 위한 삶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미래를 꿈꾼다고 이야기했다. 사명감을, 희생을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 멀리 두지 않았다. 훌륭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마음먹고 있는 것이다.


진정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꿈꾸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가려는 길이 지금 자신이 생각한 것과 일치하는지,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공적인 것에 대한 사명감을 그리 쉽게 지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생각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아이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공적인 삶, 타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여를 가치 있는 것,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 마음이면 시작으로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멋있어 보이는 일을 우리는 대개 선택하니까.

'훌륭함'이 자신의 멋을 지탱하는 일이라면, 분명 아이들은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품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짧게라도 이야기해주려고 했다.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로 이야기했다. 자신 바깥의 어떤 것을 위한 삶을 선택할 때,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그 시간을 버티려면 근육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 했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무게를 가늠하고, 때로는 버틸 만큼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더 큰 꿈을 꾸길 바랐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꿈을 이루는 순간까지 지켜가기를 바란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다음 세대에게도 훌륭한 사람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인지 알려주기를 바란다. 설령 그 꿈이 부서지더라도, 오늘 더 큰 꿈을 품어서 부서질 조각도 더 큰 것이길 바란다.* 나를 위해서 살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훌륭한 사람으로 다시 만나길 마음으로 소망한다.



(2021.11.22.)


*. 내 선생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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