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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18. 2021

시간이 재촉하는 아침 날.

시월의 분주한 월요일.

바쁜 주말을 보낸 탓에 월요일 새벽부터 시곗바늘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초침의 발걸음이 분침의 움직임을 재촉하고, 바늘에서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캄캄한 방에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고, 커튼 뒤로 여명이 삽시간에 돋아온다. 주어진 시간은 모든 이에게 객관적인 것이지만, 시간이 변화하는 느낌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약간은 무력해진다.


바늘이 시간을 재촉할수록 빛이 드는 밀도가 높아지며, 아침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만큼 마음이 급해진다. 예외에 취약한 삶의 방식을 바꿔야 했다고 자책한다. 생활은 온갖 변수로 차있고, 그 변수를 통제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부지런히 벌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그 노력이 약간은 허사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다만, 그 생각은 예외에 대한 불편함과 분노 같은 것은 아니다. 생활이 예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예외가 던진 불안을 버티는 것은 정신력과 체력임을 상기하며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타고 전해진 불안, 그 불안이 퍼뜨린 후회의 잘못을 직시한다. 그리고 늘어진 생활을 반성하게 된다.


반성이 끝나면 항상 다짐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다짐은 긴장에 관한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방향을 잘 정하고, 길을 잘 살피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가는 방향과 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가야 하는 이유는 급히 가는 길 위에서는 여러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곳으로 가면 빠를까, 발이 젖어도 가기만 하면 될까.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가다 보면, 그동안 경험으로 쌓아둔 지식 대신에 불안이 밀고 오는 느낌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게 되곤 한다. 새로운 어떤 길이 지름길이라고 하는 근거 없는 느낌에 사로잡히면 장애물과 위험의 경고등을 무시하게 된다. 새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지만, 위험에 빠지기도 쉽다. 한편으로는 목적만 중요하게 여기고 과정을 무시하기도 쉽다. 생활이, 그것으로 이루어진 삶은 좋은 것에 관한 것으로서 윤리적’이고, 옳은 것에 관한 것으로서 도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목적지에 도달해도 과거에 붙잡혀 지난날의 의미와 가치를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삶으로부터 나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 내게는 약간은 지난날이 허사일 것만 같다.


전혜린의 <목마른 계절>을 꺼내 “긴 방황”이라고 하는, 평소 좋아하는 부분의 글을 읽으며 숨을 골랐다.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라는 문장에 집중한다. 이상과 꿈은 결국 어떤 이가 되고,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윤리와 도덕의 투영이다. 이상과 꿈은 방향이고, 행위의 준칙인 것이다. 수 해 전에 꿈을 읽고 목표를 생각하며 삶을 살게 되고 있다는 자기반성의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결국 방향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잃고 있었던 날에 대한 반성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어지는 “우리에게 뜻밖인 형태로”라는 조건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상과 꿈으로 살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항상 삶은 우연적인 것임을 덧붙여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도 예외 앞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약간은 무력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잃지 않고, 나를 잃지 않고 가다 보면 “지금 회상해보면 한마디로 내가 ‘어렸었다’는 느낌”이라는 자기 삶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


결국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향을 향한 나의 족적, 그리고 그 족적이 남긴 궤적이 예외적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에 더해, 그 모든 것이 나와 나의 삶이라는 이해임을 생각하며 전혜린이 ‘어렸었다’고 말한 그 시점에 가장 얻고 싶었던 ‘이해’에 조금은 근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불안의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에게 뜻밖인 형태로. 동화같이, 분홍 솜사탕 맛같이 느껴지는 유년기.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십 대와 이십 대. 타자(사회)와 첫 대면한 이래의 여러 가지의 괴로움. 아픔. 상처에 뒤덮인 이십 대 후반기……”


“지금 회상해보면 한마디로 내가 ‘어렸었다’는 느낌뿐이다. 꿈이 너무 컸었다. 요구가 너무 지나쳤었다.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우리 전체에게……”

(전혜린, "긴 방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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