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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ul 16. 2021

나다움

꽉 막혀있어서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게 갇혀 새로운 것들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그렇다. 그러고 보면, “나다움”이라는 것이 때로는 나를 가두는, 닫힌 방 같은 것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동경에 마지않았던 삶의 자유분방한 삶으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이유의 많은 부분이 변화가 던지는 공포와 불안이었고, 내가 지켜온 일관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한, 나다움의 보존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채로 삶을 관통하며 존재하는 ‘나다움’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변했고, 변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의 온전한 모습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온전한 모습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나는 사람들에 비친 나의 단면들을 보고, 그 인상을 모아 나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쩌면 나다움에 갇혀야 할 정당한 이유 따위는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다움은 중요하다. 누구나 깰 수 있는 것이지만,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목적지를 향할 때 선택하는 교통수단, 먹는 것과 입는 것까지 나다움의 보존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켜야 할 성실함과 일상에서 유지해야 할 내 모습과 일상의 습관과 결정이 연결되어 있다. 나다움은 윤리이자 도덕으로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자유, 내가 선택한 권리에 나다움이 묻어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밀어놓았던 어떤 것들에도 나다움은 묻어난다.


내가 했던 행동에 묻어난 나다움에 관한 이야기에 모순이 생기고, 모순이 거대하게 자리 잡을 때 큰 문제가 생긴다. 모순은 나에 대한 탐구를 더디게 만들고, 나에 대해 알기 위한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즉, 내 이야기에서 자리한 모순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래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무지는 공포를 만들고, 자기에 대한 무지는 불능을 야기하곤 한다. 나는 오직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고, 가치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다움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다움을 지켜야만 오래된 나의 것들을, 미래를 향한 나의 발걸음을 지킬 수 있다.


한편으로 나다움은 내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는 때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누구인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절제는 내가 나의 삶을 관리하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미치는 나의 영향을 관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삶에서 바라고, 지향하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다. 내가 가지면 타인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설정한 자유의 한계, 내가 지키는 권리의 영역은 내가 자유와 권리를 갖는만큼 타인의 그것들을 지키겠다는 의무의 범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나다움을 지키고, 때로는 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보존과 변화가 많은 의미를 지니는 탓에 무엇 하나 과감하게 선택하기 어렵다. 나다움을 보존할 때, 나는 나의 광대한 가능성을 때로는 포기해야한다. 반대로 나다움을 인정하지 않고, 깨기만 하면, 나는 나의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 나다움의 보존이 타인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균형을 찾아야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삶이 쉽지 않은 지점은 나와 나 사이, 나와 타인 사이, 결국 모든 지점에 있는 것 같다.


덧. 다 어려운 것이라면, 무엇 하나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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