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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ul 05. 2021

이십 대 나의 이야기

청송대, 우리가숨어들던숲

2021년 청송대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글. 이십 대의 내 모습을 정리하는 글.



이제는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청송대를 찾곤 한다. 그곳에서 보낸 지난 시간 내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이제는 미래의 언젠가로 미뤄두지 않고서 조금씩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십 대를 거쳐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에야 나는 청송대 나무 벽과 지붕을 간절하게 여기지 않고서도 버텨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학부시절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연희관을 빠져나와 사람들을 피해 청송대로 숨어들고는 했다. 나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 탓인지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사철나무 담장에 빈틈이 생겨 언제부터인지 통로가 되어버린 빈틈을 지나서 특별히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는 실개울 앞에 있는데 간격을 두고 서너 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어떤 것은 나무에 가려서 옆을 보기 쉽지 않고, 앞뒤로 간격이 있기 때문에 앞에 앉은 사람이 뒤쪽 벤치에 앉은 사람을 볼 수 없는 자리다. 게다가 사람들은 실개울의 가늘게 이어진 징검다리를 지나 반대편으로 지나갈 뿐 거의 벤치에 앉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두를 위해서 항상 열려있는 자리였다.


나는 그중에 한자리를 특별히 좋아했고, 아주 오랫동안 내 자리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나무가 적당히 하늘을 덮고 있어서 한참 앉아있어도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 그 자리는 청송대를 둘러싸고 새천년관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등지고 놓인 벤치였기 때문에, 비록 연희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였지만 사람들과 눈 마주칠 일이 없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제격인 자리였다. 점심시간이면 청송대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아주 가끔 눈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한적한 자리였다. 그러서일까, 내가 그 자리를 찾을 때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나 보다 먼저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괜히 우울한 느낌마저 들곤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바람의 결을 느끼고, 나뭇잎 사이사이로 간신히 빠져나온 빛의 잔여물들을 끌어안고는 했다. 무엇이 그리 어려웠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입학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안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했고, 어디에도 편안하게 속하지 못해 방황했다. 심지어 사소한 인사말을 꺼내놓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백양로 길을 걷다 멀리서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보일 때면 길을 건너 마주치지 않도록 피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캠퍼스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이 따뜻했고, 적어도 내게 악의를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단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사람들 속으로 더디 들어가는 나의 습속 때문에 길게 이어진 묘한 이질감으로 혼자 힘들어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청송대 그 자리는 이십 대의 내가 결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곳이었다. 용기를 내 피하고 싶은 상황에 맞서는 것이 청춘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는 마음먹는다고 단번에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기 그 자체를 버티기 위해 필요한 힘이 내게는 얼마쯤은 필요했다. 곧 용감한 나를 위해 힘을 모으고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기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청송대는 내게 용기를 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잊을만하면 휘몰아치듯이 삶을 덮쳐오는 외로움을 떨쳐내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찾아오는 불안감을 잠재우곤 했다. 당시 내가 느낀 외로움과 불안감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게서 머무는 한 나는 힘을 잃어갔다. 청송대 벤치에 앉아 비록 회피한 것일지라도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던 순간이 내게는 힘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청송대에서 종종 사람들을 봤다. 그중에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따금씩은 배달음식에 술잔을 채우고, 열을 올리며 토론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가끔은 청송대를 강의실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청송대는 삶을 이루는 역동적인 힘들이 교차하는 공간과 같았다.


하지만 나처럼 홀로 숨어든 사람도 꽤 있었다. 그중에는 무슨 힘들고, 슬픈 일이 있었는지 서로 빗겨선 나무들이 간신히 가려주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한참을 울다가 툭 털고 일어나 심호흡을 하고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그리고 청송대를 찾는 어떤 이들에게 청송대는 그 너른 품을 빌려줬던 것이다. 나에게 도피처를 내어준 것처럼 그들에게도 전유될 어떤 의미의 공간을 내어줬던 것이다.


백양로에 첫 발을 내딛던 스무 살의 내게 캠퍼스는 꿈으로 가득 찬 공간이기도 했지만, 적응으로 고생스러웠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청송대는 내게 쉼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줬다. 여러 날 청송대에서 보낸 시간이 내가 ‘꿈’이란 단어를 삶에서 내려놓지 않은 이유를 줬다. 나는 학부시절 보낸 많은 시간을 청송대에 빚졌다. 당시 편치 못했던 마음들을 달래준 것은 7할이 내가 좋아했던 청송대의 그 터였고, 2할은 그 위에서 쏟아지는 빛이었고, 1할은 나무를 스치고 내게까지 와닿는 바람이었다.


서른이 훌쩍 지난 지금도 캠퍼스에서 꿈을 지키고, 키워가고 있다. 연희관을 집처럼 드나들며 학부시절 교수님들이 던진 화두와 그것에 대한 나의 수용과 반박을 거름 삼아 부지런히 학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전처럼 청송대에 숨어들지 않는다. 추억을 곱씹으며, 둘러볼 뿐이다. 청송대는 내게 불안을 등지고 나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내주었다. 내가 보낸 청송대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회피의 시간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오롯이 다시 일어서 사람들과 손잡고, 내가 꾸던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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