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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May 04. 2021

먹고, 웃고, 성장할 수 있을까

찐 고구마를먹으며

오늘은 점심 삼아서 찐 고구마를 먹었다. 흙이 묻은 상태로 씻지 않고, 오래도록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더는 둘 수는 없을 것 같아 며칠 전에 쪘다. 아마 그대로 며칠 더 두었다면, 먹을 수 있는 것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찌기 전에 속이 시커멓게 변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고구마는 대체로 신기하리만큼 단단한 상태로 오래도록 썩지 않고 굳게 버텨냈다. 그런 것들을 먹기 위해서 쪄두었다. 이제야 고구마는 내게서 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고구마는 이제 금방 먹어치우지 않으면 쉬게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썩기 전에 먹으려고 쪘기 때문에 빨리 먹지 않으면 금방 쉬게 됐다.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많은 것들이 고구마의 신세와 비슷한 것 같다. 무엇인가 도모하려고 하는 일은 대개 내게 없던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어딘가에 두었던,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일에서 기억이 소재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목적에 맞게 효과적으로 취하려고 한다면, 기억이 언어로서 쓰이고,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개념, 문장, 문단으로서 배치되어야 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방법으로 그것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바깥으로 꺼내어 변화를 시도하는 그 순간부터 부지런히 취하지 않고, 잠시라도 내버려 두면 금세 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이를테면 글이 사람의 마음에 닿는 어떤 것이 되려면 사람이 속한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에 유익한 것으로서 내게 있는 어떤 것을 취하려면 결국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잠시 그것의 존재를 잊는 순간 찐 고구마처럼 쉬어빠지게 돼 버려야 할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처음의 목적을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상하는 것을 피하려고 찐 고구마를 억지로 먹다 보면, 맛을 느낄 여유는 어느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먹는 일은 숙제와 같은 무거운 일이 되어버린다. 먹는 일이 기계적 섭취 활동이 된다고나 할까.


아마 이 모든 것의 해법은 적당히 삶고, 썩지 않을 만큼 적당기간 보관할 수 있는 양을 삶지 않고 두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적당함'이란 쉽게 정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쯤 배고픔을 참고, 얼마쯤은 고구마 맛에 대한 욕망의 좌절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고구마를 버려야 하는 아까운 마음을 얼마쯤 받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게 있는 것을 충분히 쓰고, 그것을 쓰면서 충분히 기뻐하며, 기대한 만큼 성장하는 일은 참 어렵다. 어떤 때는 내 가능성을 꺼내놓지도 못한다. 또 어떤 때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느껴야 할 기쁨이 괴로움에 덮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장을 이뤄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선택하는 순간 괴로워하고 슬퍼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덧. 삶은 언제나 내게 문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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