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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Mar 13. 2017

성장, 기념의 대상

연애법 열두째



수많은 기념일들은 기쁨만큼이나 연인에게 피로감을 준다. 그 날이 다시 오고 있다.



    화이트데이 시즌이다. 발렌타인데에서 시작된 초콜릿과 사탕, 온갖 달디 단 것으로 연인의 손이 허전하지 않게 되는 시즌이다. 연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화이트데이(3월 14일),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는 물론, 삼겹살데이(3월 3일) 등 온갖 데이(날)를 기념하는 것이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기쁨’을 빼면 온갖 ‘데이’를 기념할 이유가 무엇일까? 연애는 일상이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이미 연애하며 서로 주고받는데 말이다.

     

    연애에서 서로에게 중요한 대상을 기념하는 일은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중요하다. 기념함을 통하여 연애를 지탱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생산하는, 소중한 자산인 ‘우리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수록 자신의 세계에 연인이 갖는 비중은 커진다. 내가 존재하는 많은 시간과 공간이 연인과 연결되기 때문에 연인의 부재는 나의 불완전성을 함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애에서 중요한 만큼 기념을 두고 연인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그 오해와 다툼은 ‘연애’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기념을 사이에 둔 오해와 다툼은 기념해야할 대상에 대한 이견 때문에 발생한다. 곧 “무엇을, 왜, 기념해야할까?”라는 기본적 질문에 대한 각자의 인식적 차이가 심심치 않게 생기며, 때때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척 간단하다. 좋은 연애를 만들고,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라는 대답만이 왜-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일 수 있는 것이다. 곧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기념하는 행위를 통해서 주려는 목적이 기념의 목적으로써 유일하다. 그리고 여기서 기연인의 기쁨과 행복의 실현이라는 목표가 수반된다.   


    그런데 “무엇을 기념해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내리는 일은 연인의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목표만으로는 결코 특정하기 어려운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연인의 즐거움과 행복은 늘상 목표이기 때문에 '기념'의 대상을 찾기 위한 질문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념은 특별하는 것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곧 기념이란 기념할 대상을 정하기 위하여 연애를 구성하는 사건의 의미와 가치를 해석하여 하나의 대상으로 정립하고 그 대상을 기억하는 인식적 작용이며, 또한 구체적 행위로써 표현해야하는 작업으로서 공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나의 자원을 한껏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을 기념하는 일이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특정한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선택대상이 연인 사이에 중첩된다면 오해와 다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 중요한 대상에 대한 견해를 소통을 통해서 “중요한 대상”에 대한 상호주관성을 구축할 수 있을 때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연애에 먹구름이 끼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이 주관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한 대상에 대한 상대의 소홀한 태도가 자칫 자신에 대한 소홀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관계의 의미는 퇴색되고, 연인으로서 함께 할 이유가 사라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질문”의 중요성에 대한 의미가 공유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특별하게 정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애기간을 기념하는 100일, 200일 조차 실은 인위적이다. 100일보다는 101이 더 낫고, 200일 보다는 237일이 연애를 보다 오랜기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는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에 대해서는 보다 큰 범주의 테마가 필요하다.     


    기념하기 위한 “무엇”에 관한 테마로서 “성장”은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변화를 자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일상에 지치고, 때로 권태를 느낀다. 일상이 지치는 것, 권태로운 무엇이 될 때, 일상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애도 일상이기 때문에 지치고, 권태로워지는 것을 피하기는 힘들다. 연애가 지치고 권태로워지는 그 때 ‘성장’에 대한 자극과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곧 연애의 일상을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다움을 연애의 지배적 정체성으로 갖는 성장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지속과 유지에서 변화와 성장으로 역동적(dynamic) 상태로서 달리 받아들이는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곧 일상과 성장의 기념해야한다고 믿는 테마로서의 “무엇”이다.



재론컨대 “성장”



    연인은 “따로, 또 함께” 존재하는 인간 군상이기 때문에 각자의 일상을 지속하는 힘과 함께 연인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힘, 곧 “따로”로서, “함께”로서 제대로 존재하기 위한 힘을 북돋아 줘야한다. 두 힘이 모두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연애는 좋은 연애로, 안정적인 연애로 진전될 수 있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일과 200일은 기간의 지속이 아니라, 우리의 연애가 더 좋은 연애로, 더 나은 결합으로 진전되는 지점을 기록할 수 있는 계기로서 기념의 의미를 부여하며, 수많은 데이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념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로부터 서로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특별할 것 없고, 연인에게 아무런 의미조차 원래 부여받지 못할 이 날들을 통해서, 그간 관찰하고 이해해온 힘겨운 일상에 지친 연인에게 소소한 기쁨이라도 안겨주며,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인간을 향한 연인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의미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관리하고, 키워갈 수 있도록 힘의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기념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장하는 연인과, 성장을 통해 진전하는 우리 연애를 자각할 수 있다면, 연애는 지루하거나 권태로운 일이 아닌, 즐거운 모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연인은 나의 성장을 위하여 기념이라는 응원을 통해 나를 북돋우고, 나는 그의 성장을 위하여 기념이라는 응원으로 힘을 넣어줄 수 있다면, 우리 연애는 충만한 힘으로 가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연애는 즐거움과 행복이 연속하는 과정이라고 연인 사이에 상호주관적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곧 좋은 연애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끝으로 기념이 진정으로 연인과 연애의 성장을 위한 가치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연인과 연애의 일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기억해야 한다. 연인과 연애의 현재를 모른다면 성장이라는 변화를 읽기 위해 필요한 시작점과 시작점에서 멀어져온 변화의 지점들을 결코 읽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찰, 이해, 기억이 필요하다. 화이트데이가, 수많은 기념일들이 연인의 앞으로 다가온다. 연인과 연애가 성장하고 있는지, 그 여부를 자신이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찾아오고 있다.



연애법 열두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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