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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Mar 23. 2017

자존감, 연애의 블랙홀

연애법 열세째

    연애의 시작이 "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별 역시 "나"로부터 시작한다. 연애에서 나의 정체성에 아로새겨진, 여러 부분에서 나온 기준이 연애의 상대로서 누구를 선택하고, 어떻게 만나며, 어떤 결론을 내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연애의 처음과 끝인 것이다. 곧 스스로 연애에 임하는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연애의 시작과 끝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오래된 나의 정체성은 잔잔한 호수 위에 뜬 돛단배와 같이 연애라는 거대한 세계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의 일렁이는 물결로 몰아친다는 점이다.


  연애는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연애를 하며 자신을 그간 지탱해온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응답으로 오랜 정체성을 둘러싼 연애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정체성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어느 때에는 기존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하겠다고 결심한다. 곧 우리는 연인에게 사랑받으며 오래된 내 정체성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 확신하고, 때때로 연인과 심하게 다투며 연인과의 다툼을 일으킨 내 정체성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한다. 고민 끝에 현재 연애에 장애가 되는 것만 같은 정체성의 일부분을 바꾸려 시도하기도 하지만, 다툼이 생길지언정 그것을 유지하기로 고집하며 자신의 오래된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장벽을 쌓기도 한다. 요컨대 우리는 연애에서 상대에 의한 인정(recognition)작용(인정 + 불인정)을 통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도 하고, 그와 독립된 세계에서 온 ,'오래된'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정작용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활동이 연애이며,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연애의 힘이다. 연애의 힘은 내 세계를 바꾼다. 그러나 변화는 순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를 유발하는 힘은 늘 과거를 유지하려는 힘으로부터 저항받고, 때때로 변화를 위한 시도가 저항에 의하여 무산되기도 한다. 수많은 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별과 좌절이 연애와 사랑의 쌍이 되어 노래와 시와 책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연애와 사랑이 지닌 변화의 힘, 힘에 대한 저항, 저항에 의한 변화시도의 무산이 일련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애라는 변화시키려는 힘, 변화를 거부하는 오랜 "나"(정체성)의 저항, 그리고 결과로서의 연애의 지속과 이별에 의해 채워진 격전지의 중심에는 "자존감(self-esteem)"이 있다. 연애하고픈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연애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받는 운명에 처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나는 그에게 어울리는 상대인가?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사랑은 이 연애를 좋은 연애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나의 가치, 능력, 통제(력)에 대한 질문이며, 이는 자존감의 핵심 내용이다. 곧 우리는 연애하며 상대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 연애라는 미션을 좋은 연애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나의 능력, 다툼이란 상황을 다시 온기로 채울 수 있는 통제력 등 나의 자존감을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에 대해서 질문받고, 때로는 자존감이 존재를 위협 받는 것이다.

(가치, 능력, 통제 등 자존감의 차원에 대한 내용은 Curry, N.E. and C.N.Johnson, 1990, Beyond self-estemm: Developing a genuine sense of human value, in Research Monograph of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ducation of Young Children, Washington DC: NAEYC. 참조)



 자존감이란 자기 존재가 가치있고,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믿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은 항상 그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충격 대응하며 동적 과정으로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며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존감은 상황에 관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란 힘이 상황에 관계없이 일정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지만, 외부의 강한 충격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자존감을 둘러싼 격전지는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의 장이다. 우리는 연애하며 연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서 자존감의 탄탄한 기반을 가질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연인에게 무시당하며 당당했던 나의 모습, 자존감 충만했던 나의 기반을 한순간에 잃기도 한다. 곧 나의 자존감, 곧 정체성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처절한 싸움의 장이 연애의 일면인 것이다. 연애를 두고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조언은 이처럼 인정투쟁적 본성을 지닌 연애를 꿈꾸는 자가 당면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의 존재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연애하며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연애의 투쟁적 본성에 있다. 낯선 두 세계의 충돌로 인하여 우리는 한번에 나의 자존감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나의 세계를 상대에게 열어젖히기 힘들다. 상대가 내 자존감을 지켜줄만한 상대인지 탐색하며 자기 세계를 지키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이와같은 두려움을 해소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안전(security)이 보장되야만 안전을 넘어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새로운 목표를 꿈꿀 수 있어야만 안전에 천착하며 멈춰버린 연애의 시계를 미래로 흐르게 할 수 있다.


    자존감을 지켜주는 "존중"은 연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생다가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두려움을 해소할 시간을 요구할 때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며 존중받아야 한다. 두려움에 갖혀 상대의 존재를 보지 못하고, 인정할 수 없다면 연애는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곧 자기 스스로 (최소한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와의 연애는 상대의 시간에 대한 착취와 다르지 않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와의 연애는 감정이라는 이름의 폭행을 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바로 여기 있는 상대와의 연애를 통해 존중받아 자존감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면 상대와의 연애 앞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상대가 존중을 경험하고,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존중"의 행위는 중요하다.


    "자존감"의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혹은 존중을 통한 "자존감"의 유지가 연애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존감이라는 말이 때때로 블랙홀처럼 연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뭉뚱그려진 수사가 연애를 면밀하게 관찰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이 존중받기 위하여 자존감의 기반이 되어줄 연애로부터 매번 역설적이게도 도망치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자존감을 둘러싼 인정투쟁이 갖는 '상호성'을 간과하는 데 있다. 연애하기로 결정하며,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 오랜 나의 정체성, 곧 자존감의 토대는 그 때부터 질문에 뒤덮인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에게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당신은 나를 존중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물음은 많은 경우에 "당신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당신과 연애할 수 없어."라는 조건문을 함축한다. 곧 나의 자존감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이 연애는 무용하다는 믿음이 담긴 것이다. 문제는 이 믿음이 상대를 바라볼 기회를 박탈하는 데 있다. 상대도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애가 자존감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인정하는 상대로부터 인정 받을 때"라는 조건이 성립해야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호성에 대한 간과이다.


    나의 자존감의 보존에 대한 욕망에 치우쳐 연애라는 인정투쟁의 상호성을 망각한다면, 자기 자존감의 보존이라는 미명하에 상대에 대한 불인정 혹은 무시가 자행될 수 있다. 이 경우에 상대의 자존감의 기반은 불안정해 진다. 곧 상대는 연애라는 자존감의 기반에 대한 확신을 잃을 수 있다. 자신을 대하는 상대의 일방적이고 거친 태도에서 자신의 가치, 연애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능력, 연애라는 인정투쟁적 상황에 대한 통제력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게 되면서 자존감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단 한순간으로 불인정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경험은 나의 당신, 당신의 나, 당신은 나의 사랑이며, 나는 당신의 사랑이라는 상호주관적 인정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짙은 안개를 드리울 수 있다.


    결국 연애라는 인정투쟁의 격전지가 자존감의 탄탄한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연애라는 투쟁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신중한 마음으로 연애라는 인정투쟁을 상호성으로부터 사유해야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롤링(J.K.Rowling)은 2008년 하버드대학교 졸업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You will never truly know yourself, or the strength of your relationships, until both have been tested by adversity."


    우리는 자신과 나의 관계의 힘에 대해서 역경에 의해 도전받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역경에 당면해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역경이 존재하는 사실이 삶에서 갖는 의미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역경의 본성을 알아야한다. 그래야만 자신과 관계의 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본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존재함을 이르며, 존재의 내용 역시 상황과 환경에 대한 의미해석으로부터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경의 본질에 대한 이해없이 나, 관계의 힘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연애란 본디 오랜 나의 정체성, 곧 오랜 나의 자존감의 기초에 대한 무엇보다 큰 역경과 다름없다. 그것은 인정투쟁으로서 존재에 대한 위협을 가한다. 그런데 연애는 나의 정체성을 죽음에 몰아넣는 위협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연애라는 인정투쟁을 경험하며, 진정으로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인정받으며 무엇보다 확고한 자존감의 기반을 얻을 수 있다. 곧 연애에서 겪는 역경은 연애에 임하는 나와 상대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해주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는 것이다. 연애라는 이 역경이 본디 좋은 연애를 지향하고 있으며, 상대를 서로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며, 이를 통하여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존감을 가진 강한 나, 그리고 우리를 지향하는 본성을 지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존감은 중요하다. 그런데 자존감에 지나치게 천착하여 연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게 방치해서는 안된다. 연애가 역경이고 투쟁이더라도 우리는 연애를 통해 자존감의 위기에 당면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자존감의 기반을 갖게 된다. 깊이 생각하고, 호흡하고, 겸손해야하는 것은 연애의 양면성, 아니 표면을 걷어내야만 하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 때문이다. 끝으로, 상대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말았으면 좋겠다. 상대는 연애하는 우리,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감히"라는 라는 말로 오만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연애법 열세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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