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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8. 2022

별 헤는 밤

금일 온종일 한 편의 시를 곱씹으며 보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었다. 몇 해 동안 주말에 들르지 않던 캠퍼스에 들러 윤동주 문학동산에서 그 시를 우두커니 바라봤다. 나는 시비 앞에서 별을 다 헤지 못하는 이유를 아침이 쉬이 오기 때문이고, 내일이 있으며, 청춘이 아직 이지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 시인의 말을 거듭해서 되냈다. 낮은 소리로 몇 번을 읊조렸다.


근래 불안의 시간을 넘으려고 일찍 잠을 청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멈춰 선 것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멈춰 서면서 별을 셀 시간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언젠가 윤동주 시인을 따라 별 하나에 좋은 것들의 이름을 붙여봤던 적이 있다. 기형도 시인이 돌층계에서 플라톤을 읽었던 것을 따라 플라톤을 읽었던 것처럼. 한동안은 하늘을 볼 틈 없이 그저 머릿속에 내게 좋은 것들을 마치 별을 헤듯 떠올리곤 했다. 많은 시간을 그렇게 버텨냈다. 그러나 불안이 엄습하는 현재, 그 틈마저 주지 않고 있다. 일찍, 그리고 힘써서 정신의 불을 끄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이 쉬이 오고 있는 것만 같다.


다만, 나는 시에서 이야기하는 그와 달리,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말을 걸지 못하고 있다. 그저 어머니, 어머니라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머니를 부르는 것 말고는 어머니에게 전혀 말 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저 "괜찮다"라고 말씀해주시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를 편히 부를 수가 없다. 처음 어머니가 그립지만, 보고 싶다 감히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어머니를 부를 수 없게 되자, 시와 달리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도 생각을 뻗게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멈춰 있는 것처럼 되었다. 다시 별을 헤며, 다시 좋은 것을 떠올리고, 다시 쉬이 오지 않는 아침을 언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력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을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력감조차 버리지 않고,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의 느낌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다시 나다운 어떤 것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이 찾아와 삶이 비극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에서도 의미를 찾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구나, 나도 사람이었지 하는 뜻하지 않는 긍정을 하게 된다.


다시 별을 세며, 다시 어머니를 부르고, 다시 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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