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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9. 2022

관계의 자산

문득 오직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자아를 짊어진 나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때때로 나를 위하여 살고 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자신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날이 언제나 하루쯤은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위한 삶을 알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너무나 자명하게 나를 위하여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아주 우연하게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이 만나는 경우가 있다.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마치 자신을 위해서, 내가 타인을 위해서 삶의 시간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직 나를 위한 삶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저 나는 나를 찾고, 나를 위한 삶을 위한 힘든 여정 속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힘든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타인도 나를 통하여 어떤 고비들을 넘기고 있을 뿐이다. 타인이 나를 위해서, 혹은 내가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삶이란 서로에게 빚내서 사는 삶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간신히 서로의 곁에 머물거나, 우연히 각자의 옆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우연을 필연처럼 느끼는 것은 지속되는 관계의 시간 때문이다. 자신과 타인의 만남이 마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결합의 시간의 지속 말이다. 


다만, 관계의 시간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될 수 있는 것은 타인에게 진 빚이 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 될 때이다. 마음과 마음, 행동과 행동, 말과 말이 오가며 서로에 대한 빚이 생기고, 비로소 관계에 대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이 생겨나게 될 때 그 사람들의 관계는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의존하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무엇인가 이루려는 욕망을 자제하려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 그리고 그 사람의 나를 향한 욕망과 그의 삶을 향한 욕망을 지지하려는 노력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상호의존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가 갖출 수 있다. 그 과정은 힘에 겹다. 나를 덜어내고 나를 참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힘겨운 과정을 거쳐서야 관계의 자산이 생긴다. 


관계의 자산은 관계가 위태로울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당신이 아니면 안 돼."라고 하는 마음이 관계의 자산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보여주며, 위기를 끝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게 만드는 것이다.


관계의 자산이 힘을 발휘하려면, 관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산을 공유해야 한다. 상호의존성이 비대칭적이라고 한다면, 즉, 어느 한쪽만이 사실상 자산을 가지고 있고, 한쪽은 오직 부채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관계의 자산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에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혀 없거나, 그 자산이 고르게 분포하지 못할 때, 관계의 자산은 그 가치를 사실상 잃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위기는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준 것은 무엇인지,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준 것과 얻은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살펴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관한 평가의 끝에 관계는 계속되거나, 끝이 날 수 있다. 그래서 관계는 과거 덕분에 지속되고, 과거 때문에 끝나는 것이 되는 것 같다. 


좋은 관계를 항상 꿈꾼다. 힘든 관계에 항상 괴로워한다. 우리는 항상 관계를 통해서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항상 살뜰하지는 못해도, 같은 의미를 담더라도 따뜻한 단어와 형식을 빌어야겠단 생각이 하곤 한다다. 속이 추운 날 플리스 재킷처럼 몸을 감싸주고, 더운 날 한 잔 맥주 같이 열기를 내려주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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