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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8. 2022

시집을 샀지만, 읽지 못했다.

다시 나를 사랑할 때,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시집 한 권을 샀다. 슬기를 채워 오는 이에게 나눠주려는 바람을 담은 것일까, 그 이름이 슬기샘인 대학교 서점에서 시집을 찾았다. 어느 작가의 어떤 시집을 사려고 마음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점에 있는 말의 뭉치들이 내 마음의 그물에 걸려오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슬기샘에 이따금 들른 지 스무 해 가까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슬기샘의 시가 흐르는 줄기는 말라가고 있었다. 지난번 오래간만에 만날 학부 선배를 위해 시집 한 권을 샀을 때 내가 만든 빈자리가 다른 시집으로 차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시의 물줄기가, 그 덩어리감이 슬기샘의 공간을 채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슬기샘이 왜 수많은 슬기의 줄기 중에서 시의 줄기를 말리는 데 동의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너무나 드물게 슬기샘에서 시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 때문일까, 너무나 좁아진 슬기샘의 크기 때문에 슬기샘의 오늘을 버티게 해줄 수 있는 유용한 것들만 최소한도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쨌든 슬기샘을 유지하는 방법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포섭되어 버린 것 같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열 권도 되지 않는 시집이 서가에 간신히 꽂힌 듯했다. 나는 그중에서 장정일 작가의 시집을 선택했다. 그 제목에 끌리기도 했지만, 익숙한 시집의 모양과 만듦새 때문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출판사의 시집을 슬기샘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고, 차선이 내가 산 그것이었다. 몇 번을 읽으면서 넘겨 낱장을 붙잡던 풀이 힘을 잃고 정리된 옆구리가 터덜터덜 해질 때 나는 시집 읽기에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좋아한 그 출판사의 시집은 양장본이 아니어서 구부려 책장을 빠르게 넙기기 좋았다. 나는 특히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특히 부지런히 펴서 읽으며 그 쾌감을 종종 느끼곤 했다. 익숙함과 함께 만들어진 쾌감 덕분에 좋아했던 출판사의 시집이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차선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선인 그 출판사의 시집마저 슬기샘의 마지막 것인 듯했다.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기억이 있는 시인의 시집은 내가 처음 슬기샘을 찾았던 2000년대 초반을 훌쩍 지나 2015년에 2판으로 나온 것이었다. 슬기샘에서 얼마나 머물렀을지 대략 느낌이 왔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2015년부터라고 한다면 7년 남짓의 세월이다. 어찌 됐든 슬기샘이 변한 것에 비하며 어딘가에서 멈춰버린 것만 같은 9,000원의 가격이었다.


시집의 제목은 <길 안에서 택시잡기>였다. 시집을 꺼내 훑어볼 때, 늦은 밤 대로에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연상됐다. 그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가는 택시, 그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줄 것 같다가 좁게 열린 창문으로 조건을 확인하고,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던 택시의 불빛, 택시의 뒤를 바라보며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난 것이었다. 행위는 늘 사람을 통해서 연상되는 것만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집을 처음 폈을 때, 각각의 시가 가진 길이감이 썩 반갑지는 않았다. 짧은 시들에 대한 나의 선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에 특별히 이끌렸다. 시집을 사들고 슬기샘을 나왔을 때, 약속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이 남아있었다. 근래 불안에 휩싸이는 날이 많아서 좀처럼 마시지 않던 커피를 한 잔 사서 평소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찬 커피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날씨가 됐다. 온도의 변화만큼 시가 그리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기대한 것을 이루지 못한 시집사기였지만, 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둡고 불편한 느낌을 풍기던 글들에서 짙은 냄새 같은 것들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축축하고, 어딘가 퀴퀴한 냄새였다. 글 속에서 견디다 보면, 내가 마주한 현실이 맑고, 밝은 풍경을 하고 있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 큰 기대를 하며 참고 읽어나갔다. 그러나 최근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갔던 것처럼 글에 대한 나의 기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휩쓸리고 있음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확실해졌다. 나의 기대는 근래 나의 바람에서 어김없이 비껴서있었고, 오래간만에 마음을 기댈 시집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냄새는 코를 찔렀고, 나는 이윽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됐다. 나는 형편없이 나약해져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허물어지면 안 돼,라고 외쳤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시집을 완전히 덮었다.


평소라면 좋아할 만한 내용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 내게는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집을 덮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생각이 들어, 이것을 내가 모르는 곳에 두고, 나의 정체를 숨기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만, 책을 버리지는 못했다. 내 마음에 따라 글을 버렸다면, 무엇하나 취할 수 있는 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버리는 대신에 시집 읽기만을 중단하고 가방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의 나를 위한 시집 사기와 읽기를 끝냈다.


세상이 참 야속하다 생각했다. 내게 기쁨을 줬던 것들조차 오늘의 내게 작은 위안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시가 잘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뿐이니까. 지금은 쉽지 않더라도, 분명 다시 읽을 날이 올 것이고 그 때는 시로부터 불편한 것들 대신에 무엇 하나쯤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내가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불안을 버리고 다시 건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를 다시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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