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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4. 2022

밥의 힘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서 살았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식사 시간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일이 내게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급식에서 유난히 짙게 느꼈던 참기름 냄새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식욕이 넘치던 시기였기 때문에 뭐라도 잘 채워 넣었다. 당시에도 잘 먹지 않던 튀김과 라면조차 부지런히 욱여넣었다. 


욕망이 다른 욕망을 덮었다고 해야 할까.


기숙사에 머문 3년을 보내고 나서 바깥에서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잘 먹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했다. 하루 온종일 바깥 밥을 먹은 날이면, 어딘가 공허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생각이 아주 오랫동안 밥에 대한 내 생각을 지배했다. 대학에 와서 약속이 있더라도 버스로 30분 이상이 걸렸던 자취집까지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나올 생각을 했던 것은 모두 십 대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유럽 여행을 하는 한 달 동안에도 밥을 사 먹는 것보다는 간단하게라도 직접 해 먹으려고 했다. 빠듯한 경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짧지 않은 시간 걷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밥을 해 먹자 생각했던 것이다. 호텔보다 조리가 가능한 숙소를 구한 것도 밥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집밥에 대한 내 생각이 사치이고 시대착오라고 생각하게 됐다. 끼니를 챙기기보다는 때우는 날이 많았다. 인스턴트 음식과 배달 음식이 짧은 식사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잦았다. 사는 게 바빠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집밥에 대한 생각이 유별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한 끼라고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대하듯 성실한 마음으로 끼니를 대하지는 못했다.


지난밤 밥을 먹다가 왜 그랬을까,라고 자문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밥이구나, 마음이 오가는 가장 따뜻한 순간이 밥을 먹는 동안에 일어나는 것이구나. 손길을 느낄 수 없는 밥은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마음을 먹지 못한 사람은 건강할 수 없다."


불현듯 내게 밥을 먹었는지 늘 물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났다. 부모님은 짧게 통화하더라도 늘 끼니를 챙겼는지 물으시곤 했다. 먹을 것이 널린 이 시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내게 물으셨던 그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밥을 먹으며 부모님께서 내 끼니에 왜 그토록 신경 쓰셨는지 생각이 났다. 부모님의 말씀에는 마음이 담긴 밥이 몸을 채우지 못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염려가 담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지겨울 만큼 물었던 것은 부모님께서 밥에 실어 보내셨던 그 마음을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입에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큼이나 마음에 따뜻한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 마음은 다양한 경로로 먹는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온기를 온전히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밥'인 것 같다. 나의 끼니를 신경 써주고, 그것으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집밥 말이다.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건 그 집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밥. 


밥솥에서 하얀 김이 올라오는 그 풍경이 소중하다. 마음의 온도가 따뜻한 기운을 담은 하얀 김으로 우리 집에 가득 차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끼니를 때울 생각을 그만해야겠다. 나를 다시 나의 온기로 채워야겠다. 



덧. 여행스케치의 '집밥'을 유난히 고된 날 들었던 이유는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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