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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02. 2022

걸어서 통과해야 할 길

대학로에서.

학부생 시절 살던 집은 학교에서 금화터널과 대학로를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에 복잡한 마음이 되는 날이면 종종 수 정거장 앞에서 내려 한 시간 넘게 걸어 집으로 가고는 했다. 주로 인사동동 근방에 내려서 광화문 교보문고며, 그 시절 좋아하는 장소를 지나서 걸었다.


걷다 보면 복잡한 마음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몸이 웅크려지는 쌀쌀한 날에 햇살이 따스하게 나를 비추거나, 땀이 흐를 때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면, 외롭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을 더 멀리 두고, 시간을 쏟아붓던 선택이 항상 위안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무용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참을 걷다가 “내가 왜 괜한 고생을 하지?”라며 속으로 푸념하곤 했던 것이다. 그때, 그 생각이 들던 곳이 대학로 근처였다. 한참을 걸었어도 30분 남짓 더 걸어야 집에 닿을 수 있었던 이곳에서 나는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종종 고민하곤 했다.


대학로를 걷던 날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됐다. 참 오래간만에 익숙했던 이 길을 다시 걸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걷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이 지점에서 걷는 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의미 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힐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머릿속의 생각을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마저 무거워지는 그 불길한 느낌을 왜 내가 가져야 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생각의 중간과 끝에 설 때마다 늘 걷기를 선택했다. 걷던 길을 마저 걷지 않으면, 그래서 끝까지 걷지 않으면 걸어서 집에 온 것이 아니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오늘 다른 방법으로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디뎌서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고 걷고 또 걸어서 반쯤은 지쳐서, 때로는 너덜너덜해져서 집에 도착하고는 했다.



근래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이 그 시절 대학로를 지나는 때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간절하게 다리를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을 때면 유난히 쓰린 새끼발가락이 쓰린 것 같아서 이제는 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치면 좋겠다 생각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십 대 시절 그때처럼 다른 방법일랑 포기한다. 내 두 다리와 발로 걸어야 할 걸음을 걸어야만 지금을 일단락 지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벗어나고 싶은 이 순간을 내 두 발로 걷지 않으면,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걷는 속도도 지나가는 풍경들, 그 풍경들에 담긴 글자와 사람의 표정, 그것을 바라보며 내가 얻을 인식과 느낌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때처럼 걷기로 다짐을 둔다.


쉽지 않지만, 걸어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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