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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20. 2023

회복기

다시 시를 찾아 읽게 되고.

시(詩)가 생활에서 말라버린 시간을 보냈다. 시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축약한 언어에 음률을 붙인 글을 읽을 수 없는 시간을 몇 달 보냈다. 사랑이 내게 없고, 이별의 감정이 무거웠다. 일상적인 삶에 대한 감사에 공감할 수 없었고, 희망을 품는 부푼 마음을 이해할 단서가 내게 한동안 없었다. 감정이 모자라서 감정이 찬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몇몇 좋아하는 시인이 있지만, 특별히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시로 시작했다. 독일을 여행하면서 당대의 사람들이 괴테에 의지한 바에 관한 이야기들을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학자로서 자리잡지 못한, 지금은 너무나도 입지를 다진 철학자도 그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그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거인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금,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하는 시로 괴테의 것을 선택했다.


살아가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하고, 타인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애정과 연민의 마음을 품는 데 단서가 될 시를 특별히 찾아 읽고 있다. 좋은 것과 행복한 것이 그리 멀지 있지 않기에 삶이 주어진 시간 동안에 헤매지 말고, 단지 행복을 붙잡을 방법을 배우라는 "훈계"라는 시를 몇 번 곱씹어서 읽었고, "요란한 삶을 추구하지 않고"라는 시에 멈춰 되풀이하여 읽었다.


괴테는 2연을 이렇게 썼다.


봄날의 대지에서 많은 것이 움터 나오고

땅속에서 그 뿌리들이 자양분을 듬뿍 빨아들인다.

축복해주지 않을 여름철이 오더라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2022년의 가을을 지나 겨울을 보냈다. 시가 말라버린 시간이었다.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23년의 봄을 나는 마주 하고 있다. 어제 절기상으로 우수였다. 우수 뒤에 얼음은 슬슬 녹아 없어진다고 한다.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나는 봄에 다시 시를 읽기 시작했다.


괴테의 시는 내게 힘을 준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시점에 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내 삶에 뿌리를 부지런히 뻗어 삶에서 성장하는 시간을 지나 원숙해지는 시간을 향하기 위한 양분을 듬뿍 빨아들일 과업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봄은 그저 희망에 찬 시간이 아니라, 축복해주지 않을 시간에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힘을 길러야 하는 시간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감정을 채우면서, 타인의 존재와 타인의 의지에 지배(domination) 받거나 종속(dependence)되지 않고 다시 나로서 자유롭기 위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자유 얻으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시 나를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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