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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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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24. 2023

Shit happens

살아가는 것.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바닥으로 제법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본 것과 거의 동시에 ‘따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엇인가 닿았다는 알게 되었다. 주변을 살피니 다름 아닌 내 신발에 묻어 있었다. 나는 보았고, 내가 본 것이 무엇일지 대강 예상도 했다. 그러나 결코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신발에 묻은 것을 닦을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나 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티슈와 물티슈를 가지고 다녔지만, 최근에 오래도록 쓰지 않은 것 같아 정리한 탓이었다. 다행히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길이여서 집에 들러 신발을 닦고 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며, '멈추기 전에 내가 마주했을 공기'와 '멈추고 다시 걸어가며 마주할 공기'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피하고 싶지만 결코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게 되는 일 말이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에 쉽게 짜증을 내거나, 어떤 때는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고,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고도 조언을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원치 않은 일들 때문에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순간을 가르며 '다름'이라고 규정한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지에 따라 즐기는 일도 될 수 있고, 수용하는 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멈춘 덕에 차가운 바람을 피했고, 날카로운 경적을 피했으며, 빨간 불이 나를 멈춰 세우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게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다. 그러나 모두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그리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근래 마음이 때때로 무거워진다. 갑작스럽게 닥친 삶의 변화, 삶의 변화가 내게 온 방식 모두 받아들이기 힘겨운 날이 적지 않다. 우리를 깨기로 결정했다면, 관계를 정리했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를 기망하는 너무나 큰일이 일어났다. 나는 내 삶에 갑작스럽게, 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난 일들을 소화해 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허공에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고, 신뢰하며 보낸 시간이 추억조차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처참한 경험으로 돌아왔으니까.


오늘 신발이 갑자기 더러워진 것처럼 내가 마주한 상황에서 속으로 떠올린 말은 “Shit happens”이었다. 이 말처럼 살다 보면,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을 때나 쓸만한 말로 표현해야 할 일도 일어난다. 내게 최근의 경험은 정말 그랬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가 어떻게 대응하건 마음에서는 그런 일조차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 없는 사람과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Shit happens"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린다. 이 영화에서 가볍게 등장시킨 이 말은 포레스트가 공허 속에 달리던 시기에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하나의 장면에서 등장시킨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해진 말이다.


영화에서 이 말을 등장시킨 그런 즐거움, 위트가 내게도 다시 생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변에게도 웃음을 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 희망의 마음을 품고 다시 집을 나섰다. 다행히 걸음이 점차 경쾌해지고 있었다. 팔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그에 맞춰 몸이 부지런히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기대도 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옮긴 걸음만큼 내가 속한 공간이 변할 때마다 다른 풍경을 부지런히 마주할 것이라 희망했다. 결국 정신이 새 기운으로 찰 것이라 믿게 됐다.


봄기운이 부지런히 세상을 채우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을 성실하게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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