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올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운 여름이라고 했다. 다만, 이 여름이 우리가 사는 동안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매해 그해 여름이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며, 여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말이 비슷해지고 있다. 지구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는 같다.
내게도 더운 여름이었다. 그러나 유난히 더운 여름은 아니었다. 열대야라고 할 만한 열흘 남짓의 기간 동안만 에어컨을 켰다. 잠에 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가 너무나 필요했다. 낮 시간에도 잠깐씩 에어컨을 켤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암막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선풍기를 트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한산해진 집과 평온해진 생활이 감정에 기복을 만들지 않았다. 가끔 침전하게 되는 날이 있었지만, 대체로 안정을 유지했다. 가끔 답답한 마음이 드는 날에는 해가 지는 시간에 땀에 흠뻑 젖게 될 만큼 오래 달리고, 또 운동을 했다. 땀을 흘리고 나면 더위가 몸에 옮겨 붙어 생긴 열감마저 사라졌다. 화를 낼 필요가 없는 생활이었기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었고, 그리 덥지 않게 느껴졌다.
올해 내내 하루하루 넘기기 쉽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항상성을 지켜왔다. 공부는 더뎠다. 열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몸과 마음의 항상성을 지키는 것을 넘어 어떤 하나에 매달리게 되면, 결국에 번아웃이 될 것 같았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덥지 않게 보내면서 어떤 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임 없이 스스로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이지만, 덜 열심히 하기로 했었다.
정돈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깔끔한 모습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확인하고는 한다. 가끔은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한창 자신감을 갖고 좋아하는 일에서 성과를 냈던 일 년 전 내 모습과 비교할 때, 어려움 속에서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더해진 기세가 꺾이게 된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버티며 달리 생각하려고 한다.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위기가 때로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내 마음을 다른 방향으로 부지런히 당기고, 또 민다. 그 생각으로 마음의 저 아래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와 불안과 싸우려고 노력한다. 위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바꾸려는 마음조차 품지 못했을 나의 문제들을 해결할 때가 바로 지금 왔다고 생각한다. 근거 없는 낙관과, 낙관에서 비롯된 거만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울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지쳐있던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 아침, 며칠 전이면 날이 밝았을 시간이지만 여전히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있었다. 온기를 넘어 열기를 머금은 바깥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가장 시원하지만, 특별히 더웠다는 그 여름이 이제 끝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을이 아주 가깝게 있게 된 것이었다. 좋아하는 러닝화를 신고, 아직은 어두운 길을 달렸다. 아주 천천히, 생각하는 만큼 오래 달릴 수 있을 만큼 속도를 내서 달렸다. 땀에 흠뻑 젖었다. 몸에 적당히 온기가 돌았다. 이제 스스로 열을 내며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도 괜찮은 시간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