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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Sep 24. 2023

가을 아침

안산(鞍山)에 올라

수개월만에 다시 안산에 올랐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찬 기운을 한껏 머금은 바람이 제법 세게 불고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멀리 날아갈 것을 걱정해야할 정도의 세기였다. 다만, 하늘은 맑았다. 멀리 얇은 구름이 보였지만, 푸리고 푸르른 하늘이었다. 두 마리의 새가 분주하게 나는 모습이 유난히 들어올 정도로 파랗기만 한 하늘이었다. 완연한 가을이었다.


2월 산에 올랐을 때, 숨이 가빠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경사가 급해지고, 계단이 계속 이어지는 지점,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 지점에서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조차 포기하고 싶어 했었다. 당시에 마음만큼이나 몸 상태도 저조했다.


9월의 끝자락인 오늘, 지난 2월과는 경사를 대하는 몸과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호흡이 빨라지기는 했지만, 힘들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운동을 쉬지 않고 하려고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강건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강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물론 건강이 좋아진 덕에 산행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만은 아니다. 끝까지 빠르게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천천히 걸었다. 지난여름 배운 것은 걸음을 서두르지 않으면 땀이 덜 나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2~3킬로미터 이내의 거리는 가급적이면 걸어서 이동하며 얻은 교훈 같은 것이었다. 2월을 상기하며, 정해진 목표지점에 오르기 위해서 걸음을 서두르지 않기로 거듭 다짐하며 걸었다. 수월한 구간도, 그렇지 않은 구간도 있었다. 그러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오르자 거듭 다짐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정상에서 양희은이 부르고 아이유가 다시 부른 "가을아침"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익숙했던 풍경이 내 생활에서 사라졌고, 나는 그 익숙함을 다시 채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중간에 노래를 끊으려다가 노래를 마저 다 들었다. 경쾌한 걸음은 아니었지만, 그리 무겁지도 않은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오래간만에 박노해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가 적힌 곳 앞에서 한참 동안 시를 읽었다. 시는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힘이 들고, 앞이 안 보일 때 마음에서 하늘처럼 여기는, 그리고 나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나의 하늘을 보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현실을 달리 규정하며, 오늘의 의미를 무르게 해석하는 것을 버겁게 여기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거움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달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있는 것이었다. 시는 어려움 속에서도 어려움이 거듭 되고, 어둠 속에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모두 어려움을 버리려 포기하지 않는 이유, 달리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견디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아야 하는 것은 어려움이나 어둠이 아니라, 보려고 하는 나의 하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침 등산을 마치며 나의 하늘이 틀림없이 있고, 나는 나의 하늘을 보며, 거칠고 어둔 이 산을 넘어 벗어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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