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Sep 26. 2023

감기

몸을 추스르는 저녁

레몬 하나를 반으로 갈라 손에 움켜쥔다. 좋아하는 잔을 꺼낸다. 자른 레몬을 잔 위에서 힘껏 쥐어짠다. 끝에서 중간, 중간에서 다시 속으로 손가락의 위치를 달리하여 한 번에 고르게 주지 못한 힘을 레몬 반덩이 전체에 고르게 준다. 나머지 반쪽에도 힘주기를 반복한다. 레몬즙이 잔에 제법 모인다. 꿀에 절인 생강을 크게 한 숟가락 가득 떠 레몬즙 위에 넣는다. 꿀도 생강보다 조금 덜 떠서 보탠다.


한동안 습기를 날리려고 틀었던 난방을 켠다. 몇 도로 얼마나 난방을 켜두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약간은 덥다 싶을 정도가 될 때까지 켜두기로 한다. 그러는 중에도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기침이 난다. 물을 팔팔 끓여볼까 하여 준비를 한다. 번거롭다. 그만둔다. 잔에 정수기 온수를 붓는다. 꿀이 묻은 숟가락에서 꿀이 사라질 때까지 젓는다. 아주 잠깐 동안 젓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강향이 조금씩 올라온다. 코가 막히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대사를 듣기 위해서 유튜브에서 드라마 장면이 편집된 영상을 찾아 켠다.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동훈의 대사를 듣는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동훈을 통해서 생각했다는 지안의 대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동훈의 대사, 그리고 동훈의 승진을 축하하는 후계동 사람들의 대사를 듣는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삶에 위안이 되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가 글이고, 드라마, 영화와 같은 영상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


천천히 레몬 생강차를 마신다. 레몬이 생강절임과 꿀의 단맛을 기분 좋게 감싸서 무겁지 않은 맛을 낸다. 생강이 조금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생강의 알싸한 맛이 덜 한 것 같다. 좋아하는 대사를 들으며, 금세 한 잔을 다 마시고, 다시 물을 따라 이제는 맛이 거의 사라진 차를 마시고 또 마신다.


차를 마시고, 좋아하는 말들을 들으니 몸에 온기가 돈다. 저녁에 하려고 했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든다. 다만, 더감기에 제대로 걸리기 전에 몸을 추스르는 것이 낫다 생각하며 죄책감을 던다. 저녁을 잘 먹지 않는 편이지만,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별스럽게 든다. 내일 새벽 운동을 쉬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해야 하는 것인지 벌써부터 고민스럽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면, 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주 오래간만에 감기에 걸렸다. 며칠 전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나서 잘 때 틀어둔 선풍기 탓인 것 같다. 그날 일어났을 때, 목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 생각난다. 어제 보다는 괜찮지 않지만, 아직 견딜만하다. 견딜만한 수준에서 털어내려면 쉬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지나면 정말 아플 것 같다. 그래서 방전되기 전에 속도를 조절하여 나를 살피는 여유를 가진다. 돌아올 새벽에는 괜찮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