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금년에 마주하며.
삶의 변화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듯이 계절도 어느 날 갑자기 변해 가을에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 겨울이구나, 하고 느끼며 부정하지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게 한다. 지난 주말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는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처럼 세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살갗에 닿아도 찌르르하게 냉기가 오를만큼 찼다.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예보에 겁을 먹고 옷을 제법 잘 챙겨 입고 길을 나섰지만, 바람에 맺힌 냉기가 몸과 옷 사이의 틈으로 들어와 온몸을 떨게 했다.
거리의 가로수들 중에 잎이 넓어서 바람을 더욱 많이 맞을 수밖에 없던 잎들이 바닥으로 먼저 떨어져 있었다. 고개 들어 바라본 나뭇가지의 잎들은 푸른빛을 잃었다. 얼마 전부터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보였는데, 그 수가 많이 늘어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바람이 몸에 드는 것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구나,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계절이 변해가는 풍경은 오직 내가 있는 이곳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 있는 벗이 갑자기 겨울이 왔다며 풍경을 보내줬다.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됐다고 했다. 내가 경험하기 시작한 2023년의 겨울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내 친구도 공교롭게도 함께 경험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겨울은 참 적당한 계절이다. 추위 덕분에 몸을 웅크려도 결코 이상할 것이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위해서 힘을 아껴두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개월동안 공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서에 머물러 있었다. 정체된 상태를 깨지 않고, 스스로 머물러 있으려고 했던 것도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은 변화를 위해 자신을 채근했던 시간이 있었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던 것이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강박은 나를 조금도 변화시키고 있지 못했다. 뉴턴의 요람(cradle) 양 끝단 같은 일들만 일으키며, 정체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진자가 왔다 갔다하며 탁탁 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앞으로, 혹은 또 뒤로,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발걸음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멈춰있었다. 그래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지만 결코 움직이지 않는, 정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동면을 앞둔 것처럼 힘을 발산하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고요를 택했다. 변화를 억지로 이루려고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주변을 정리하려 하고 있다. 등에 힘을 주어 몸을 펴려고 하지 않고, 등에 근육을 채워 넣기 위해서 조금씩 중량을 늘여 운동을 했다. 몸을 억지로 펴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여전히 고요와 축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은 침전의 시기 같게 느껴져 변화를 갈망하게 되더라도 고요의 시간 속에서 힘을 채우지 못해 익지 못할 것을 꺼내 놓지 않을 생각이다.
고요와 축적의 시간을 보내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겨울은 너무나 적절한 계절이다. 눈이 내린다면 더욱 적절한 계절이 될 것이다. 눈 덕분에 내 발자국 소리를 더 크게 들을 수 있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요 속에서 차근차근 얼마나 잘 힘을 모으고 있는지 소리의 크기로 알고, 걷고 있는 방향을 내 등 뒤에 깊이 파인 발자국들이 만든 궤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겨울이 내게 진정 적절한 계절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이 겨울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올 다음 봄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봄이 오면 알게 되겠지, 내가 얼마나 이 겨울을 잘 보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