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의 말로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넣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하면 거기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지난 일요일 장욱진 회고전(가장 진지한 고백,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다녀왔다. 전시회 한편에 위와 같이 장욱진 화백의 말이 쓰여있었다. 화백이 십 대에 이미 자신의 삶을 온전히 쏟아 종사하겠다고 선언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말로 이해했다. 한국 미술계의 거목인 그는 그림을 그리며 고통과 좋은 느낌을 함께 경험하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고통을 수반하면서도 좋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인지 이 짧은 말속에는 담겨있지 않다. 다만, 자신을 한 곳에 몰아넣는 것, 감각을 다스려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나 이외에 아무도 없게 되는 것 세 가지 때문에 고통과 좋음을 동시에 경험하였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1.
넓은 세계 속에서 한 곳에 자신을 묶는 것, 넓은 세계에서 전달되는 여러 느낌에 마음이 요동을 치지 않도록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하게 하는 일 같다. 절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하여 자신을 규율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요동치는 본성을 지닌 정념(passions)에 휩싸이고는 하는 사람에게 부자유 혹은 부자연을 느끼게 하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한편,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게 되는 것, 곧 세계 안에서 홀로인 나를 경험하는 것도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자기 홀로' 경험은 집중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고독과 동행해야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존재인 인간에게 외딴 경험이자, 외딴 것이어서 낯설고, 또 어려울 수 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러나 절제라고 하는 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과 자신과 세계의 연결관계마저 지배하고, 또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들어서게 된 '자기 홀로'의 세계에서 그 지배력 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쁨은 살아가는 일에서 좋은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화백이 말한 좋은 것은 러셀(Bertrand Russell)이 수동적 즐거움과 대비시켜 삶의 행복과 연관 지어 이야기한 '건설적 목적'이 자리하는 삶 같은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미 언급해 두었지만, 화백은 십 대에 이미 삶을 온전하게 쏟아 그림에 종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또 부단히 쌓아 올렸다고 한다. 그는 비교적 작은 화폭에 자신의 세계가 담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전시회에 한 편에 쓰인 해설에 화백이 통제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작은 화폭을 선택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되어 있었다.
아마도 화백은 고통을 수반하는 절제를 통해서 자기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가졌고, 그 통제력 위에서 부단히 창조하고, 파괴하고, 다시 창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정체되지 않았지만, 일관된 의미를 가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던 것 같다.
4.
시간이 갈수록 삶은 쉬지 않고 요동치고, 내 것이 되는 것을 부정하기에 내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서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는 생각에 고통을 느끼고는 한다. 무엇보다 "어찌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이름 모를 대상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열패감마저 든다.
그러나 전시회를 보며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과 다른 내 모습 때문이었다. 곧, 우연이 너무나 큰 불확실성으로 다가와 생활의 많은 것을 쥐고 있던 내 손의 힘이 풀리게 만들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내가 스스로 손에 힘을 주고 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의지적으로 집중하여, 의도적으로 내 삶에 구축할 세계에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5.
"나는 심플하다." 이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 마디지만 또 한번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전시회에 쓰인 또 하나 작가의 말에는 단순한 삶을 위해서 고집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심플하다, 고집하고 있노라라고 하는 화백의 말을 한동안 연결 지어 곱씹고 있다. 그리고 내가 고통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 생활이라고 느끼기만 하는 오늘을 달리 생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 찾는다.
화백의 그림을 거듭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