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결혼식
학부 때 교양수업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살가운 사람이라 꽤 아꼈습니다. 어느 날인가 패션회사에 면접을 보게 됐다며 꽃무늬 바지를 입고 가는 게 어떨까 물었던 엉뚱한 면이 있던 사람이었단 생각도, 졸업식에 가서 축하해 줬던 기억도 있습니다. 한동안 종종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종종 연락은 주고받았습니다.
얼마 전 결혼을 한다며 연락을 전해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제는 연락조차 뜸해진, 과거에 우정을 나누던 저를 떠올려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의식의 저편에 두지 않게 해 주었기 때문에 고마웠습니다. 지난 시간을 잃지 않고 곁에 잡아두는 방법은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과 대화 나누는 것 말고 달리 없는 것 같은데 후배의 연락이 꼭 그런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인연 때문에 지난 수년간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에서 덜어내야 하는 일을 겪었고, 또 매일 겪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삶에서 지우는 일은 그 사람과의 관계만을 기억에서 덜어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관계는 어디서 얼마큼 얽혀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만큼 심히 얽혀있어서 생각지 않은 장면에서 서로 다른 인연이 꼬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관계가 얽혀있지 않더라도, 그 시절 자신이 관계와 함께 떠오르고, 자신을 떠올릴 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연애시절>에서 "기억이란 제멋대로다. 지난날의 보잘것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라고 했던 은호(손예진 분)의 대사와는 반대 방향으로 표정 짓게 하는 것이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 같달까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후회해서 아프지 않으려고 많은 기억들을 억지로 떠올리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시간이 뻥 뚫려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잘린 까닭에 공허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해진 연락이어서 잠시 덜 공허해졌던 것 같습니다. 끊긴 것들 가운데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이 있어 시간이 기억에서 뚝 잘려 사라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과거의 시간을 잃지 않고 곁에 두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점심께 결혼식이어서 아침부터 서둘렀습니다. 근래 결혼식에 갈 때는 정장을 하지 않고는 했습니다. 타이를 꼭 했지만, 적당한 가벼움도 걸칠 수 있게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인연을 생각해 평소보다 더 예의를 갖추고 싶어서 정장을 했습니다. 결혼식 시간 40분 전에 도착해서 후배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지난날 후배의 모습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처럼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후배의 밝은 얼굴을 보며, 오래간만에 편안하게 웃었습니다. 고맙고,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