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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10. 2017

신뢰, 기대와 선택 사이

연애법 일곱째

    모든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뢰는 연애에서도 중요하다. 연인으로 상대를 인정하는 믿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둘의 관계를 연애관계라고 규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곧 신뢰의 존재 여부는 연애의 존재를 가늠하기 위한 필요조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연애에서 신뢰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비하여 ‘신뢰’의 의미는 불분명해 보인다. “나는 당신을 믿어”라고 이야기할 때, 이 이야기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약정의 유지를 의미하겠지만,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마치 ‘신뢰’라는 말의 반복처럼 불분명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는 형상이다.


    연애에서 신뢰의 불분명성은 항상 문제가 된다. 연애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항상 서로 다른 의미가 대화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채로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충돌의 많은 지점이 신뢰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당신의 의도를, 말을, 행동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종국적으로 연애를 이어오던 인연의 끈이 파열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을 믿는다.”라는 말이 연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작업은 좋은 연애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는 “객관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 주관적 믿음이다. 신뢰는 스스로 믿으려는 결심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신뢰는 홀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상호 신뢰할만한 행위의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상호주관성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언제고 스스로 믿으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결정에 의해서 붕괴된다. 그것이 설령 상대의 실책에 의해서 촉발된 심적 상태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결정이 아니라, 나의 주관적 결정의 산물인 것이다.


    주관적 믿음으로서 신뢰는 적어도 세 가지의 형상을 갖는다. 첫째,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서 형상을 갖는다.(predictability) 상대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예측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에서 행위가 일어나리라고 믿을 때, 신뢰한다고 믿는다. 둘째, 상대의 행동이 믿을만하다고 믿는 형상을 갖는다.(credibility) 이는 주관적 믿음으로서 의지적 작용이 신뢰에 내재되어 있는 형상을 보인다. 셋째, 상대가 자신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의 형상을 갖는다. 곧 자신에게 해가 되리라는 상대를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good intention) 요컨대 신뢰는 예측, 의지, 선한 의도를 내용으로 하는 형상을 갖는다.

(Deborah Welch Larson의 Trust as psychological sense의 분석은 그의 국제정치학 논문에서 따옴)


    흥미로운 점은 신뢰는 타인의 의도와 행위에 일정정도 의존하지만, 재론컨대 신뢰의 모든 형상은 자기선택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곧 믿을만한 대상을 평가하고, 그 대상을 신뢰한다고 규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상대는 중요한 변수이지만, 종국적으로 자신이 신뢰함을 결정하는 것이 신뢰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뢰는 늘 위험감수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신뢰하는 상대의 행위조차 자신이 신뢰영역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며, 상대가 믿음을 주려는 의도조차 신뢰받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곧 기대와 결과 사이의 일치가능성을 결코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신뢰’가 존재한다. 결국 신뢰한다고 이야기할 때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믿는 나의 의지적 선택이 존재할 때, 신뢰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신뢰의 형상 속에서 우리는 연애를 가로지르는 신뢰의 양상을 결정하고, 만들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신뢰가 자기 선택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믿을만하게 행동했을 때 믿어주겠다는 생각은 좋은 연애를 위해 자신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좋은 연애를 만들기 위한 주체적 선택행위를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연애는 항상 기대와 바람, 그리고 실망으로 점철될 위험이 높다. 우리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신뢰의 효과는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상황 속에서 실현되며, 극대화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믿을만한 사람을 믿을만한 상황에서 믿는 것은 어쩌면 신뢰가 아닐지 모른다. 물론 신뢰할만한 사람을 만나 신뢰할 상황에만 처할 수 있는 연애가 무엇보다 좋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과 상황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스로 신뢰할만한 행동을 하고자 의도하더라도 결론은 다를 수 있으며, 의도에 의해 행위가 통제되지 않는 많은 이유는 환경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끊임없이 요구받는 상황에 연애는 처해있는 것이다.


    신뢰는 안정과 쌍을 이루는만큼 불안과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안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순간 연애에는 그늘이 드리운다. 상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드러내는 이유는 틀림없이 애정때문이다. 그러나 불안과 의심을 드러내는 것을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소유욕 없는 애정이란 존재하지 않음은 틀림없지만, 상대를 통제(control)해서 불안과 의심을 해소하며 상대를 갖는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애정법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불안을 스스로 통제하고, 상대를 믿을 때 연애가 진전될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왜 믿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신뢰의 이유는 좋은 연애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나로 인하여 당신이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 지금 이 시간에 존중해야하는 사람들 앞에서 불편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관계 속 자유를 인정하기 위해 당신을 믿고, 자유 속에서 즐거울 당신의 모습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에 당신을 믿는 것이다.


    신뢰하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자유롭기를 간절하게 바라기 때문에 불안을 누르고 당신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연인 간 신뢰이다. 나의 하루조차, 나의 행동조차 내가 의도한대로 이끌어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연인의 생각과 행동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고, 현실화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불안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연인 사이에서 서로를 ‘좋은 애인’으로서 상호인정함으로써 좋은 연애는 지속된다.



    연인은 항상 상대가 나로 하여금 믿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 곧 욕망과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기 때문에 믿는다는 선택 사이에 놓인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전자의 욕망이 실현되기를 원한다. 상대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길 기대하는 심리는 전자의 욕망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믿음직함은 좋은 연애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의 믿음직함에 의존해서는 결코 좋은 연애를 만들어나가기 어렵다. 스스로 믿음을 결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닦쳤을 때, 현명하게 믿음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좋은 연애가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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