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Jan 28. 2017

이름, 당신의 '나의' 무엇

연애법 넷째

    연인이 상대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각자의 이름을 부르기도, 상대의 특징을 담은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기도 한다. 각자가 붙인 애칭에는 연인만의 추억이 담긴다. 그러나 상대의 이름을 추억의 저장소 쯤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관계란 상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이름을 부여해서 당신이 나에게 누구인지, 내가 당신의 누구인지 규정한다. 그리고 스스로 상대에게 부여한 이름에 담긴 의미와 가치의 크기만큼 상대를 생각하고, 생각한만큼 상대를 향하여 행동하게 된다. 바꾸어말하면 상대에게 부여하는 이름에 따라 관계의 형태와 깊이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친구라 이름 붙인 타인에게 연인을 향한 마음의 크기, 생각의 시간, 행동의 방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라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운명을 초콜릿 상자에 비유한 주인공 포레스트(톰 행크스 분)의 대사일 것이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 You never know what you gonna get." 이 대사는 인간이 자신이 의도하는대로 삶을 끌고가고자 노력하더라도 삶은 운명이라는 힘에 의해, 혹은 우연에 의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대사이다.


    하지만 이 대사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포레스트가 댄 중위(게리 시나이즈 분)에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니(로빈 라이트 분)를 소개할 때 했던, 별 것 아닌 것 같은 대사가 살떨리게 더 좋다: "This is my Jenny." 이 대사는 포레스트 자신의 세계에 가장 사랑하는 제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사이다. 그토록 사랑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연인이라고 자신할 수 없었던 제니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제니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존재로 인정해도 된다는 것을 "포레스트와 제니"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사이다.


    이 대사를 기점으로 포레스트는 어딘가를 향하여 떠날 필요없이 정착한다. 제니가 있는 "안전한" 포레스트의 세계에서 그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니에게 부여한 "my Jenny"라는 이름은 제니를 소유하였다는 포레스트의 지향적 상태의 완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제니가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거대한 구성자임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하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큼 삶의 평형추가 굳건하게 자리잡게 하는 일은 드물다. 삶은 늘 어디론가 쏠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몰입이란 이름을 붙이며 열정과 시간의 쏠림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열정과 시간이 쏠린 자리의 맞은 편, 빈 자리에는 항상 공허가 남는다. 포레스트가 그린보우로 돌아왔지만, 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던 그 공허의 자리 말이다. 그 공허가 해소된 것은 제니의 편지 한 통이며, 제니의 존재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그 편지 한 통을 기점으로 포레스트는 공허의 자리를 채우고 행복한 삶을 구성하게 된다.



누군가의 제니가 아니라 포레스트의 제니라고 명명함으로써 포레스트는 제니가 자신의 세계에 굳건하게 자리잡은 덕에, 자신은 균형 잡혀서 안정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것이다.



    이 영화에 영향을 깊이 받아 나는 연인을 "나의 무엇"이라고 지칭한다. 상대를 규정한 이름에 소유격을 붙여 그가 나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세계에 가장 거대한 구성자로서 연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존재 덕분에 내가 안전한 나의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당신으로부터 받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고 있게 되었으며, 그래서 당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 이름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의 규정과 마음의 부여의 결과로서 나의 세계에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 밖에 존재하는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힘을 기르고, 미래를 계획하려고 한다.



"나의" 당신이라고 명명함으로써 당신에게 할애하는 시간과 생각의 비중이 커지고, 할애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당신에 대한 행동을 예의바르게, 충실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소유격을 붙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하는 일이다. 연애와 같은 사랑에 관한 일련의 활동이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을 담는 지향적 활동으로 상대를 사랑할 때 하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소유는 때때로 상대의 자유를 침범한 자신의 무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변질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무엇"이라고 명명할 때 연인을 향한 마음의 반대편에 스스로 누름돌을 하나 올려두어야한다. "나의 무엇"이란 이름은 당신을 내 마음대로 어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게 준 즐거움과 행복에 감사하며, 나는 그 감사에 걸맞은 존중과 사랑을 당신에게 주며 당신의 세계에서 나 역시 평형추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변질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것이다.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 고정희, <사랑법 첫째>





연애법 넷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