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법 아홉째
연애는 계속될 수록 루틴화된다. 반복과 반복의 연속으로 연애의 역사가 꾸려지는 것이다.
연애에서 루틴과 권태를 분리하여 생각하기 매우 어렵다. 연애가 사건(event)이 아니라 일상(daily life)이 될 때 ‘권태’가 피부에 와닿는다고 느끼며, 현재를 ‘권태기’로 이름붙이는 것이 예삿일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삶이 커다란 자극으로 채워질수록 권태에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강도 높은 자극에 익숙한 사람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자극에 대해 흥미를 갖기 어려운 탓이다. 연애는 그간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가 일순간 밀어닥치는 사건으로 비견할 수 없이 큰 자극이다. 따라서 지금 이 연애에 대한 애착과 만족이 클수록 루틴이 될 때 권태감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연애의 루틴으로부터 권태를 반드시 떠올려야할까? 연애의 루틴이 갖는 다른 의미는 없을까? 연애의 루틴은 좋은 연애와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연애의 루틴이 반드시 권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의 루틴은 권태와 달리 연애의 지속가능한 토대로서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첫째, 연애의 루틴은 연인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항상적 장소를 제공한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말과 행동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적절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의무적 행위를 회피하고 연애를 유지하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만 존재할지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교감할 수 없고, 교감하지 못하면 (좋은) 연애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 루틴은 빛을 발한다. 아침 인사와 퇴근 후의 인사, 회식과 같은 일상적인 사건에서 반응하는 방법, 주말을 맞이하는 태도 등 루틴은 상대의 자신에 대한 성실성을 가늠하는 구실을 하며, 각각의 장소에서 소소한 표현이나마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상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애정을 표현할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울 때, 애정을 담아 만든 연애의 루틴은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만큼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루틴의 부재 -cause-> 연애의 혼돈과 무질서
둘째, 연애의 루틴은 불확실성을 약화시켜 안정감을 더한다. 곧 자극의 변동으로부터 연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하는 항상적 행위로부터 상대의 마음을 읽고, 애정을 느낄 수 있다면, 이벤트가 주는 기쁨이 혹여 비어간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루틴에서 온 감사한 마음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연애는 안전지대를 갖게 된다. 또한 루틴은 연인의 돌발적 행동이 가져올 위험을 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연인의 행동에 대한 편치 못한 감정을 예외상태로 받아들이고 연애감정의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루틴이 이따금씩 발생하는 연애의 자극은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정된 토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틴 –cause-> 상대에 대한 신뢰와 연애의 안정
연애가 루틴이 되어갈 때, 우리는 권태를 경계해야한다. 먼저, 권태를 경계하다 권태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가 루틴이 되어갈 때,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것은 권태가 아니라 루틴이라고 치부하며 루틴에 담긴 연인의 반응, 태도, 행동을 관찰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루틴은 연애의 역사가 낳은 결과 중 하나이며, 연인의 애정으로 맺어진 역사가 자리잡은 장소이다. 자신을 위한 이벤트만이 연인이 애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연인의 일상을 관찰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며 연애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련의 행동으로서 루틴이며, 이는 특별한 날의 이벤트보다 더많은 노력을 요한다. 따라서 루틴의 의미를 달리 찾을 필요가 있다. 연인으로부터 애정을 읽을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애정이 여전히 상대를 향한다면 이벤트, 일상, 루틴, 권태 등에 대한 인식적 전환은 좋은 연애를 위해 항상 필요하다.
루틴은 권태가 아니다. 따라서 권태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과는 다른 영향을 미친다.
‘연애의 루틴’이 반드시 ‘권태’인 것은 아니다.
연애법 아홉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