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헤드라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이란 간 전쟁은 끝날 줄 모르는 상태로 보입니다. 어떤 소식은 단지 한 줄로 지나가지만, 그 한 줄만으로도 주가와 유가가 출렁입니다. 평화로운 상태가 깨졌다는 뜻이지요.
저는 아침에 주유를 하러 갔습니다. 1주일 사이에 기름값이 200원 정도 오른 것을 봤습니다. 경차를 몰고 있어 보통 3만 원 정도 넣는데, 눈금은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더군요. “큰 사건”이 어느새 “생활 속 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습니다. 중동을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비행 편이 많습니다. 항로가 불안정해지면 ‘이동’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여행과 출장의 감각이 바뀝니다. 그리고 바닷길은 더 직접적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혼란은 “뉴스”가 아니라, 세계 물류와 에너지 가격의 즉시 변동으로 나타납니다. 해협 통과량이 크게 줄고, 운항이 사실상 막히다시피 했다는 보도들이 이어졌습니다.
전쟁은 물리적 타격을 남깁니다. 특히 여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공격을 받아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죽일 명분은 없다”는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와, 공격 책임을 둘러싼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바닷길에는,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 학생들은 실습을 위해 배를 탔는데,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서 발이 묶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모릅니다. 개인정보를 떠나서, 이런 사건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숫자나 한 줄 정보로 취급되곤 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비극입니다. 이 비극은 숫자와 피해의 한 줄 한 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속에서 꿈과 희망, 미래는 쉽게 사라집니다.
그런데 전쟁의 이야기는 늘, 거대한 국가 조직과 자원, 리더십의 대결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지역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하루—아니 한 순간—이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공포에 질려 위축되거나, 반대로 그 공포가 분노가 되어 또 다른 공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저는 9·11 테러 전후를 경험한 때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포워딩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테러 이후 수출입 통관이 무척 까다로워졌고, 그 변화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조이는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호와 안전이라는—어쩌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틀을 지키기 위해—우리는 타인과 타국을 배제하고 검열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냅니다. 그 규칙은 다시 우리의 일상을 구성합니다.
이런 틀 속에서, 생명체인 인간이—그리고 인간이 만들어가는 국가와 글로벌 사회가—정말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꾸 부정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일부러 방향을 바꿔보려 합니다.
"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벌어졌으니까요.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일 것인가.
수습과 피해 경함의 중심에는 리더들의 자존심이나 명예, 기싸움이 아니라—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사 한 줄에도 나오지 못하고 죽고, 다치고, 피난하고, 가족을 잃는 이들의 이름 말입니다.
개발은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루는 세상의 이치와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개발은 “작은 존재들의 변화”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이해당사자들은 과연 무엇을 귀하게 여겼을까요.
그들의 이름, 그들 국가의 이름과 이익? 아니면, 포탄의 잔해 속에서 피 흘리는 누군가의 삶?
전쟁은 전선만 확장하지 않습니다. 시장을, 이동을, 물류를, 그리고 우리 주머니 사정을 흔듭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배럴당 100달러 돌파 보도), 해상 운송이 막히며, 보험료와 운임이 치솟는다는 소식은 결국 “가계”와 “현장”으로 내려옵니다.
또 하나. 이 전쟁은 세계의 군사자산 배치를 흔듭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키프로스 등 동지중해 지역에 함정·방공자산을 보내 방어태세를 강화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우려가 커졌습니다. 주한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흐름 앞에서, 저는 “눈을 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가 이 전쟁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조차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동 전쟁이 우려됩니다. 걱정됩니다.
그럼에도 묻고 싶습니다.
오늘의 저의 질문입니다.
이게, 정말 잘 사는 게 맞나요?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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