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순전한 생명을 대하는 현재 이 세상의 자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이미지 메이킹 영상, 정치인의 홍보물에는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순수함, 미래, 희망, 평화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어린이와 같아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꾸밈이 없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어린이들이 가득한 세상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떼를 쓰고 울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더없이 평화로울 듯합니다.
그런 존재인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왜 그와 같지 않은지 묻고 싶었습니다.
특히 중동 전쟁으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폭력에 두려워하는 이 시점에서, 어른보다 더 가혹한 어린이들의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날, 믿기 어려운 보도도 접했습니다. 알자지라는 가자에서 한 가족이 “두 살 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을 당했다”라고 주장했다고 전했습니다.
(Israeli soldiers accused of 'torturing' toddler in Gaza, 영상 링크는 제외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울음이 너무 마음이 아파, 그 영상 자료를 차마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이 소식이 충격적인 이유는, 전쟁이 ‘전략’과 ‘명분’의 언어로 포장되는 순간에도 실제로 파괴되는 것은 아이의 몸, 아이의 마음, 그리고 아이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물리적 타격을 남깁니다. UNICEF는 2026년 3월 5일 성명에서, 이란에서의 무력 충돌 격화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약 180명의 아동이 사망했고 더 많은 아동이 부상을 입었다는 보고가 있다”라고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The brutality of war measured in children’s lives as hostilities escalate in Iran
성명에는 2월 28일 이란 남부 미납(Minab)의 샤자레 테이예베(Shajareh Tayyebeh) 여아 초등학교가 공격을 받아, 수업 중이던 7–12세 아동 다수가 희생되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UN 인권 전문가들 또한 해당 공격에 대해 “교실에서 아이들을 죽일 명분은 없다”고 밝히며, 학교·아동·교육이 국제규범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 시절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시절에 보호받고 자라나야 성인이 됩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다 공평하게 그러합니다.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성인의 모습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현실입니다. 현실 속 어른들입니다.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은 1949년 제네바 협약과 추가 의정서, 국제관습법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그 원칙을 널리 알리고 보호의 기준을 강조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을 했는지” 이전에, 무력 충돌의 당사자들이 아동과 학교를 보호해야 할 책무를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 16.2에는 아동을 폭력, 착취, 학대, 인신매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방향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쟁터 밖에서도 암울합니다. UN SDG 16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에 인신매매 ‘발견’ 피해자 중 38%가 아동이었고, 이는 2004년(13%) 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또한 착취 양상은 성별에 따라 달라, 여아(60%)는 성착취, 남아(45%)는 강제노동 착취 비중이 높다고 보고됩니다.
https://sdgs.un.org/goals/goal16#progress_and_info
이 지점에서 저는 문득, 예전에 좋아했던 『공각기동대』 속 쿠사나기 모토코의 대사이자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코린토 1서 13장 11절)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나 형태에 연연하지 않고 네트워크 속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선언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린 시절의 일을 버리면서 어린이를 버려버리는 진화와는 상관없는 일들을 자행한다는 데 있습니다. 약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대하는 본질적 자세를 망각하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퇴보, 인간임을 망각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당신이 과거 어린 시절의 당신을 전행의 포화 속에서 만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평화”와 “발전”을 말할 때, 그 말이 정말 어린이에게까지 닿고 있습니까?
말없이 사라져 간 아이들의 영혼에 명복을 빕니다.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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