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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18. 2022

가족같은 회사, 가족같은 동료, 가족같은 업계

우리 그냥 서로 일만 하면 안될까요? 꼭 친해져야하나요?  

영화계에 유독 회식이 많고, 술자리가 많은 것은 사실 이 업계의 특성과도 연관되어있다. 바로 친분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업계의 특성. 수치와 분석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다보니 많은 것이 주관적인 판단과 친분으로 결정된다.


재완씨는 메일을 왜 이렇게 딱딱하게 보내?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 메일에 대해서 상사가 한 피드백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고대행사에서 배운대로 용건부터 두괄식으로 메일을 쓰고, 급할 때는 볼드 글씨만 봐도 이해가 되도록 중요한 것들에는 볼드와 밑줄 처리를 하고 메일을 마무리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고 있고, 같이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는데 딱딱하게 보내지 않고 부드럽게 보낼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업계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고 유독 내가 다닌 회사가 회식이 많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요하는 곳이었다.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개인 연애사부터 자가 마련의 비법까지 안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남자친구 있어? 뭐하는 사람이야? 집은? 전세야, 월세야? 청약통장은?”



나도 회사사람도 친해지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친한 회사 사람들이 많고. 하지만 ‘친해지려면 이런 걸 알아야지’ 라는 분위기에서 강압적으로 초면에 진행되는 질문들은 거부감이 느껴진다. 입사하자마자 개인적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싸웠는데, 헤어졌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등등을 자연스럽게 모두가 이야기 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전혀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내 동료의 몇번째인지 모를 연애사부터 상사의 자가 마련 비법, 아이들의 취미, 주말 스케쥴까지. 듣는 사람은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서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나마 회사 사람이라면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걸 이해를 할 수는 있었는데, 대행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그렇게 하라는 건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다못해 메일도 친절하게 쓰라니, 메일에 ㅎㅎㅎ, ㅋㅋㅋ 같은 거라도 써야한단 말인가.



같이 술도 좀 먹고, 친해지고 그래봐



일하러 온건데 대체 왜 친목질을 해야한단 말인가. 친하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해준다고? 그거야말로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건데 그걸 대놓고 말하는 분위기 자체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다수가 기준’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내가 그 안에서 혼자서 아닌 척 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이 일이라는 것들이 실제로 숫자나 수치로만 정해지는 일들이 아니다보니 더욱 그러했다.



예를 들면 매니지먼트와의 일이 그랬다. 영화가 개봉할 때가 되면 배우들의 홍보 스케쥴을 함께 논의하게 된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홍보는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하기 싫어하는 게 많았다. 예능은 부담스러워서, 인터뷰는 매번 같은 말 반복하는 게 싫어서, 화보는 낯간지러워서, 그냥 연기만 잘하면 됐지 뭐 그런걸 해야하나 싶어서 등등. 특히 나이가 좀 된 배우들의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많았다. (계약서에는 홍보에 협조한다, 라는 두리뭉실한 말로만 써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홍보는 대체 왜 제대로 안되고 있는거냐며 말하는 배우들의 말을 듣다보면 몸속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것들은 숫자나 기술로 해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매니져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달되기 때문에 매니져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럴 때 바로 ‘친분’이 힘을 발휘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내가 일로서 매니져를 만나서 업무 미팅을 하고, 그 매니져가 배우를 설득한다. 설득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자주 술을 마시고 친분이 있는 매니져라면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매니져를 설득(이라고 하지만 압박)할 수 있고, 매니져가 설득의 Tip을 주기도 하고, 함께 총공세를 펼친다.



앞에서 이야기한 네고도 마찬가지이다. 업무적으로 오가는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네고도,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시나리오도 역시 좀 더 친하다면, 술자리에서 잘나가는 감독과 작가의 다음 아이템을 들을 수도 있고,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어볼 수도 있고, 거기에 매니지먼트는 본인의 배우를 추천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일을 따내고 해내는 것은 능력의 문제이지만 기회 한번 정도는 친분으로 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이 다 이렇게 처리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미팅 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그 안에서 해결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계속적으로 술자리가 생기고, 회사에서도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좀 더 친해지고 친분이 쌓이다보면 또 다른 일들이 생기고 들어오는 그런 것들의 악순환인지 선순환인지 알 수 없는 순환.



여전히 일은 일대로 해야하고, 공과 사의 구분은 명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Ai 로봇처럼 딱딱하게 메일을 쓰고, 카톡으로 업무 진행 하는 것을 혐오하던 나 역시 이제는 메일에 ㅎㅎㅎ, ㅋㅋㅋ을 쓰고, 카톡으로 업무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친한 사람과의 일들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 이게 업계 특성에 맞춰 내가 변해가는 것인지, 어느덧 12년차 나 역시 ‘어른들’이 되어가는 건지 때로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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