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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16. 2022

영화계 회식의 세계 3. 저도 싫어하긴하는데요

그렇다고 잘 못노는 건 아닙니다

앞에서 수많은 회식의 단점만 나열하고, 끔찍한 장면들을 이야기했지만 모든 회식이 그런 건 아니었다. 새벽까지 마시는 회식도 힘들고, 사회자를 담당하는 회식도 괴롭고, 의전까지 해야하는 회식은 너무 너무 힘들지만 내가 사회자가 아니거나, 그 단점들 사이에 약간의 장점 하나만 넣어주면 또 재미있게 놀았다. 타고난 도비, 타고난 조삼모사의 성질이랄까.



앞에서 말한 제주도 워크샵 역시도 그랬다. 울면서까지 사회를 보기 싫고, 단체 회식도 싫었고, 그 워크샵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가서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게 재밌게 놀았다. 위에서 언급한 그 수많은 단점들 사이에 몇 가지 장점이라면 친한 사람들끼리 4명을 조를 지어 다닐 수 있게 해주었으며, 렌트카와 식비, 그리고 대리비까지(술을 마셔야하니까, 술에는 정말 관대한 회사였다) 지원해주었다는 점이다. 쓰고보니 장점이 더 많은 것 같긴한데, 그 덕에 회사 내에서 친한 친구들과 다같이 진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울며 불며 싸운 노래방 프로그램은 결국 사라졌고, TF가 고심하여 새롭게 추가한 합리적인 미션은 각자 자유롭게 여행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조랑말과 사진 찍기, 제주도 전통 술 4개 이상 마시기 등 여행을 즐길 수 있고 부담없는 미션들이었다. 우리 조는 입수하기 미션이었는데,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욕하고 가기 싫어해놓고서 막상 가서는 1등을 하기 위해 한 명을 바닷가에 빠트린 채 미역을 칭칭 감아 건져내며 사진을 찍었다. 진짜 제대로 건져내는 느낌을 내기 위해 그 친구는 수십번 정도 빠지고, 사진도 수십장 찍었는데, 그 덕에 당당하게 미션 1등을 타고 상금까지 받았다. 가기 전날 까지도 워크샵이 취소되었으면 좋겠다며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이야기했었는데 말이다.



이때처럼 장점이 많지 않은 회식일지라도 신나게 마시고 취한 채 즐길 때도 있었다. 담당하던 영화가 예상했던 것 대비 엄청난 흥행을 했고, 모두가 자축을 하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다같이 한잔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담당자로서 삼배주를 빈속에 마시며 축하 멘트를 했고, 그 때부터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기억 나는 것은 거의 없고, 술에 취해 술이 술을 불러,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나고, 내가 술이 되었을 때 쯤 제작사 대표님이 회식에 합류했다. 그는 영화계에서도 약 30여년간 활동한 분으로 모두가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분이었고 나 역시도 그 분을 매우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아닌 술. 술에 취한 나는 모든 것이 행복했고 모두가 내 친구 같았다.



“대표님 ~~~ 이 선글라스 너무 좋네요~~!”



나는, 아니 술은 제작사 대표님에게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다가갔고 대뜸 대표님의 선글라스가 멋있다며 그의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뺏어 내 얼굴에 얹었다. 제작사 대표님은 황당해서 말리지도 못한 채 나를, 아니 술을 쳐다보고 있었고 신이 난 나는 그 선글라스를 쓴 채 그렇게 술자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결국 1차가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서 (심지어 그 때가 오후 4시 정도였다) 사리분간 못하는 나를 사람들이 택시에 태웠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며 버티는 나를 억지로 택시로 구겨넣어 보내버리고, 사람들이 잠깐 회사 앞 까페에서 술 기운을 날리고 있을 때 쯤 택시 한 대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우렁차게 내가 내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


내가 탄 택시가 회사 건물을 한바퀴 돌아 다시 그 앞에 선 것이다. 그 순간 다들 얼마나 황당했다고 하던지. 나는 정말 전혀 기억이 안나서 이렇게 남 이야기 하듯이 할 수 있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 이후로 나는 술 취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과격한 아이가 되었고, 제작사 대표님은 술 자리에서 나만 보면 ‘넌 저기 멀리 떨어져서 술먹으라며’ 훠이 훠이 내쫏곤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한번 더 나는 술에 취해 그의 명품 옷을 뺐었다. (당연히 회식 후 바로 돌려드렸다...)



술만 취하면 왜 그렇게 모든 사람이 내 친구같고, 스스럼이 없는지. 그날 처음 만난 배우와 회식 자리에서 완전 베스트 프렌드가 된 적도 있었다. 그 날은 영화가 무탈히 촬영을 시작하고 끝내기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 날이었고, 고사날은 모든 배우, 감독, 스텝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하고, 인사를 했으니 또 회식을 한다. 고사날은 딱히 내가 챙겨야할 것이 있는 날은 아니고, 그 날따라 친한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마음을 놓고 술을 마셨다. 마시다보니 또 술이 내가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연배우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역시 술을 좋아하고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한 배우였는데 이미 거나하게 취한 채였다. 그리고 도대체 우리 둘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 모르겠는데 서로 굉장히 잘 통했다(고 생각했다)



이야, 재완아 니 뭐 좀 아네!!


무슨 말 만 하면 서로 감탄을 하며 마치 흑인 해퍼처럼 "Yo, man" 이라며 양 팔을 크게 벌리는 아메리칸 제스츄어를 해댔고(그와 나 둘 다 토종 한국인이다), 주변에서는 또 역시나 당황한 채 ‘쟤 왜 저래’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불안불안하게 보던 후배가 화장실을 핑계로 끌어당겼고, 그 길로 바로 또 택시에 구겨넣어 주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배우와 나는 다음날 둘 다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다음 번 촬영장에서 만났을 때 세상 조신하게 인사하고, 그 역시 나를 처음 보는 표정으로 맞이해주었다. 그렇게 유명배우와의 베스트프랜드는 10분으로 막을 내렸다.


이 정도 적고 보니 내가 회식을 싫어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의 연장선상에서 느껴지는 회식’이 싫은 것이다. 즐겁게 누군가와 친해지고 즐길 수 있는 회식은 거부하지 않는다. 불편한 회식이 훨씬 많아서 괴로울 뿐. 아직도 회식 에피소드는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대사는 그 회식의 주인공이었던 내가 담당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였다.

작가의 이전글 회식의 세계 2, 송년회 TF 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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