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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14. 2022

회식의 세계 2, 송년회 TF 의 시작.

라떼는 말이야, 회식도 TF가 있었어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화 업계는 회식이 정말 많다. 크랭크인 했으니까 회식, 크랭크업 했으니까 회식, 제작보고회 했으니까 회식, 인터뷰 했으니까 회식, 시사회 했으니까 회식, 무대인사 했으니까 회식 등등, 수도 없는 회식들이 있다.


회식이라고 까지 말을 붙일 수 없는 소소한 술자리는 훨씬 더 많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배우, 감독과 하는 회식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해서 힘들고, 1차, 2차, 3차의 술자리에 노래방까지 미리 준비하고 예약하는 것도 힘들고, 대부분 새벽까지 마시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회식보다도 ‘우리끼리 하는 회식’이 가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광고회사도 역시나 회식, 술자리는 ‘재밌어야한다’ 라는 강박이 있었다. 본부 회식 등에서는 당연히 팀을 짜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런 일은 늘 막내들의 몫이었다. 그래도 좀 연차가 높아지고 나서 한 이직인지라 투자배급사로 이직한 이후로는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광고대행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동으로 회식 TF에 불려갔다.



시작은 입사 첫 해 연말 송년회였다. 연말 송년회를 하면 하는 거지, 대체 왜 TF까지 필요한지부터가 의문이었다. 게다가 연말 송년회면 당연히 경영지원팀에서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엔터업계의 특성인건지, 누군가 윗사람의 취향이었던 건지 ‘경영지원팀이 준비하는 회식은 재미없다’ 라는 의견으로 TF가 꾸려졌고, 나는 광고대행사 출신이라 PPT 장표를 잘 만든다는 이유로 착출되었다. 사내 직원들이 푸는 퀴즈 문제 화면을 만드는 데 이렇게까지 기획을 하고, 공을 들이고, 수정을 할 일인가. 다시 광고대행사로 돌아가 경쟁PT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일이 TF에서 가장 무난한 일이었다.



입사 첫 해 송년회에서는 춤도 춰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막내들은 옷도 맞춰입고 송년회 무대에서 췄으나, 나는 경력 이직자 두명만 따로 묶어서 노래방에서 추게 했다는 점 정도일까. 도대체 내가 왜 회사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야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어딘가에 신고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입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말을 듣기도 싫었고, 나와 연차 차이가 2년 밖에 나지 않는 과장님들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송년회 사회를 보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 아, 차라리 춤이 낫구나.



그때부터 연말 송년회, 회식, TF 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차피 노는 일 계획하는 거, 재밌게 해’ 라고 회사에서는 말했지만 나는 회식을 준비하는 것부터, 회식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모두 일로 느껴졌다. 모든 회식에는 사회자가 있어야했고, 게임이 있어야 했다. 마케팅한 영화가 잘 되서 스텝들을 초대해서 축하주 한잔 하는 회식에서마저도 사회자가 필요하고, 게임을 준비하고 개별 선물을 준비했다. 광고대행사에서 했던 광고주 회식만큼이나 긴 준비와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심지어 사회자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삼배주를 받고, 핀잔을 들었다. 이 정도면 당연히 일로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서 회식 TF가 꾸려지면 가장 눈치를 많이 보고 힘든 점이 ‘사회자 정하기’였다. 그 수많은 압박과 부담감에 모두가 하고 싶지 않아했다. 몇번의 TF 소집과 사회자에 대한 압박에 나 역시 못이기고 터졌던 적이 있었다.


‘제주도 워크샵 TF’로 선발 되었을 때다. 전 직원이 다같이 제주도로 가는 워크샵도 경영지원팀이 아닌 TF가 꾸려져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때도 가장 중요한 건 워크샵 둘째날 모든 직원이 모인 ‘회식 프로그램’과 ‘사회자’였다. 회식 프로그램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사실 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직원들과 어떻게든 TF 를 재밌게 만들어야하는 사명을 받은 옆팀 팀장님의 의견 충돌이 계속 일어났다. 팀장님은 계속 ‘노래방 기계를 빌려다 전 직원이 노래를 하는 것’을 추진했고(물론 그건 대표님이 노래방을 좋아해서였다), 굳이 제주도 바닷가의 힙하고 멋진 펍을 빌렸는데, 거기서 모든 직원이 번갈아가며 노래하는 걸 듣고 있어야하다니, 나는 정말 하고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재완아, 그리고 너랑 나랑 사회보자.


가뜩이나 워크샵도 가고 싶지 않은데 사회까지 보라니, 그 한마디에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조목조목 노래방 프로그램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며,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워크샵인지, 굳이 그럴 거면 제주도까지 왜 가는건지, 모든 것을 따지고 불만을 이야기 했다. 나와 팀장님의 논쟁에 다른 TF 팀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듣고 있었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팀장님이 말했다.



“재완이 빼고 다 나가.”



아, 내가 회사 생활 10여년만에 일 때문도 아니고 고작 회식 따위로 팀장과 치고받고 싸우게 되는건가. 그래, 이런 말도 안되는 회식 문화 내가 끝내버리고 만다, 하며 독이 잔뜩 올라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모두 나가자마자 팀장님은 바로 물었다.



“재완아, 너 왜그래,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그리고 그의 질문에, 냉정하고 카리스마있게 대답했어야 하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그간의 감정이 쏟아나오고 말았다.


“아니, 흑.. 저 진짜 매번 TF 소환되고 ..
입사하고 한번도 안불린 적이 없어요!!
저도 이제 연차가 있는데 맨날 불려다니고오 .. 흡...
거기에 사회까지 보라고 하시고 .. 흑..."



회식 TF 하기 싫다고, 회식 사회 보기 싫다고 우는 10년차라니. 도대체 그게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순간 눈물이 울컥 나왔을까. 정말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고 지우고 싶다. 내가 울자 팀장님도 당황해서 매번 그렇게 불려갔는지 몰랐다는 둥,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는 둥 하며 급하게 나를 달래주었다.



결국 나는 사회를 보지 않았고, 팀장님은 혼자 사회를 보게 되었다. 그 역시도 좋아서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나마 팀장인 자신이 사회를 보고 나머지 애들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중에서도 그나마 친하다고 생각한 나에게 사회를 같이 보자고 제안한건데 내가 울며 거절해버린 것이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나는 사회를 보지 않을 것이지만 그에게는 참 미안했고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TF에도 불려가지 않았다. 이불킥 한번에 얻은 프리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다행히 이후 대표님이 바뀌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많은 회식이 사라지고, 이 문화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화를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문화를 잊지 않았으며, 코로나가 끝나가자마자 바로 단체 회식을 부활 시켰다(고 들었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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