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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22. 2022

동전 신의 흥행 예지력

스코어를 알고 싶다면 나를 따르라

숫자와 데이터로 모든 것을 분석하는 세상이지만, 영화계는 여전히 미신과 징크스도 많이 믿는다. 크랭크인을 하기 전에 지내는 고사가 그러하다. 부디 무탈하게 아무  없이 영화를 찍고, 나중에는 흥행까지  되기를 기원하는 고사는 모든 영화가  진행한다. 제작사 대표가 크리스찬이더라도 진행한다. 고사를 지냄으로서  무탈히 지나가는  아니겠지만 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그런  있다.


실화나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는 미리 혼에게 양해를 구하는 굿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가장 흔하게는 공포영화를 찍을 때 귀신을 보면 흥행한다거나 하는 미신도 있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만 찍으면 억지로 다들 본 척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미신 외에 각자가 믿는 징크스 역시도 수도 없이 많을텐데 나 역시도 묘한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었다.



시작은 코믹 영화 A였다. 영화 A는 제작비도 많이 들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흥행을 예상하는 기대작은 아니었다. 200만 넘으면 손익분기점, 성공했다, 라고 평가하는 영화였다. A의 개봉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에 옆팀 팀장님과 길에서 마주쳤다.


어이, 재완아. 담당자로서 이번 영화 
몇만이나   같냐?


앞에서 말한 것처럼 200만만 해도 괜찮은 영화. 담당자로서 애정은 있지만 사실  역시도  이상의 흥행은 미지수인 작품이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던 그 때, 내 발 밑에 50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돈을 줍다니, 그것도 500원짜리를!! 요즘 같은 때에 흔치 않은 이라 순간 나는 신이 나서  동전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500만?


피식. 팀장님이 웃었다. 담당자로서의 의지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하고서 그가 떠나고  역시도 500원짜리를 주머니에 넣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럴리가 있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 그런데  일이, 일어났습니다. 개봉 이후 엄청난 입소문을  영화는 500만을 훌쩍 넘었고 나의 500원이 모든 술자리에서 소환되었다. 감독도, 심지어 배우 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흥행이라 내가 500원을 줍고 500만을 예상했다는 말은 모두에게 널리 널리 퍼졌고, 술자리에서 주연 배우는 나에게  500원을 절대 쓰지 말고  보관해놓으라며 신신당부했다.  역시 ! 라고 우렁차게 대답하며 정말로  500원을 한동안 책상 위에 전시 해놓았었다.  


이렇게 한번이면 그냥 웃고 넘길 에피소드가 되었을텐데, 그로부터 6개월  다른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시사회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 정말  어이없게 바닥이 천원짜리 지폐가 떨어져있었다. 요즘 현금도  안들고 다니는데 대체  내 앞에만 이렇게 현금이 떨어져있는거지.  천원짜리를 주워서 일어나는 순간, 눈앞에 영화 B 담당하는 과장님이 서있는 게 아닌가. 500 사건이 생각났던 나는  1천원을 과장님 앞에 들어보이며 다시 한번 말했다.


과장님, 영화 B, 천만?


그랬으면 진짜 좋겠다! 라며  자리에서 웃던 과장님의 말은 그로부터 6개월 후에  진짜가 되었다. 다음해 여름에 개봉한 영화 B  해의 유일한 천만 영화가 되었다. 물론 영화 B 어느정도 천만 흥행을 목표로 세워진 영화라 예상을 빗나간 스코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500 동전에 이은 1천원 지폐까지 그런 일을 겪자 사람들이 나를 보며 기대하기 시작했다.  사례를 들은 어떤 영화 감독님은 개봉  회식에서  앞에 1천원 짜리를 몰래 던졌는데 2시간동안 내가 발견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영화의 흥행은 … 조용히 하겠다.




사실 그저 끼워맞추기의 에피소드였을 뿐인데  역시도 한동안은  징크스 아닌 징크스에 빠져있었다. 괜히 영화의 개봉시기가 다가오면 길거리 바닥을 살펴보며 돈이 떨어져있는  없나, 살펴보곤 했다. 그리고 10, 50원짜리가 보이면 일부러 눈을 피하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우연이었던지 한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잊혀지고 영화 C 담당할 때였다. 나름 애착이 많은 작품이라 흥행을 바라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개봉  예매율만 봐도 어느정도 스코어가 예상이 되는데, 예상 스코어로는 80 정도의 사이즈로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200만은   알았는데 기대보다 낮은 예매율에 실망한 상태로 무대인사를 갔을 때였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역시나 다같이 회식을   2 자리로 이동할 때였다. 20여명의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 하필  발밑에 100원짜리 하나가 밟혔다. , 100원짜리. 나는 웃기면서도 슬픈 마음으로 100원짜리를 들어나의 팀장님에게 건넸다.


팀장님, 저 100원 주웠어요.

그 누구보다 내 징크스를 믿던 팀장님이었기에 그 100원짜리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울거면 500원짜리를 줍지 왜 100원짜리를 주웠냐며. 아쉬움 섞인 원망의 말을 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 100원짜리가 있어서 그나마 80만이 100만이라도 되었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나는 한번도 돈을 줍지 못했다.



솔직히 징크스라기 보다는 몇번의 우연이 가져온 재밌는 에피소드라는 걸 알지만, 때로는 정말 간절하기도 했다. 내가 500원, 1천원을 주워서 흥행에 성공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영화들도 있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걸 알지만 때로 영화의 흥행은 알수 없는 곳에서 터지기도 했기에 애정이 가는 영화일수록 간절히 내 동전신에게 바라곤 했다.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혹시 떨어진 돈이 없는지 살펴본다. 퇴사했지만 혹시라도 내 전 직장의 영화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퇴사자로서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여전히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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